30. 우리는 다시 시가 되어 만날 것이다(마지막회)

만날 수 있는 날을 믿는 시간

by 제노도아

윤슬로 반짝이는 햇살, 바람도 잠잠하다.

겨울방학 종업식 날이다.

한 해의 끝이자, 잠시 멈추는 날.

어르신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단정한 옷차림으로 교실에 들어오신다.

마치 소풍을 가듯, 가볍지만 설레는 모습으로 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교실에서 스스로 쓴 시를 낭송하신다.

거창한 무대와 마이크도 없이 편안하게 시낭송회를 한다.


어르신들의 시는 빠르지 않다.

중간중간 멈추며 더듬거리고 몇 번씩 숨을 고른다.

글자를 또바기 읽는 동안, 함께 한 시간들이 지나간다.

배우지 못했던 시간,

내 이름 대신 '어이!'나 손짓으로 불렸던 날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글자와 숫자,

늘 뒤에서만 머뭇거려야 했던 가장자리 생활들.

어르신들은 당당하게 당신의 시를 끝까지 읽는다.

틀려도 멈추지 않고, 끝나면 박수소리가 흐뭇하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느낀다.

이 교실은 글자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삶을 보여주는 자리라는 것을...


종업식이 끝나고 어르신들은 아쉬운 듯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신다.

“선생님, 방학이 없으면 좋겠어요."

"에고, 이 사람아! 선생님도 좀 쉬어야지."

“선생님, 방학 잘 보내세요.”

"잘 지내시고 또 봐요.”

"선생, 아프지 말어. 고뿔 조심하고."

정겨운 목소리를 하나하나 새기며 손을 꼭 잡는다.


겨울방학은 헤어짐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당신의 이름을 써 내려가는 시간이다.

연필을 내려놓는 대신 삶이라는 노트 위에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얹는 시간이다.

우리 문해교실은 끝이 있어도 끝나지 않고, 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만날 시간을 믿는 것이고, 기다림을 즐겁게 맞는 일이다.


조용히 교실 문을 닫으며, 나는 또 생각한다.

어르신들이 남긴 삶의 문장이 책 속의 문장보다 더 소중하는 것,

내 삶 속에 어르신들의 문장이 계속 자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조금 더 또박또박한 글씨로, 좀 더 환해진 얼굴로.

어르신은 꾹꾹 눌러쓰신 시를 읽을 것이다.

더욱 다져진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과 삶을 쓰실 것이다.


겨울은 지나고,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

이 연재의 끝에서 나는 다시,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