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깊은 글의 온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봄기운이 남실거린다.
고운 햇살이 창틈으로 스며든다.
예전 같으면 봄나들이 갈 생각으로 부풀었던 시간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봄빛 들뜬 마음을 다잡고 교실에 앉아 있다.
자음 14자, 모음 10자를 익히는 시간이 흐르고 받침 없는 낱말을 연습한다.
칠판 앞에 선 내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진다.
“모음은 엄마 소리, 자음은 아들(자식) 소리라고 했지요.
자식 소리는 엄마 소리가 없으면 글자를 이룰 수 없어요.
자녀들 아기 때를 생각해 보세요. 아기는 엄마가 꼭 필요하잖아요."
어르신들은 자음과 모음의 조화를 살피면서 한 글자, 두 글자를 눌러쓴다.
조용한 교실 안에 숨소리가 섞이고, 공책 위엔 삐뚤빼뚤한 글자들이 그려진다.
굵고 굽은 손가락, 수십 년 땀과 흙을 견딘 손이 이제 글자 하나를 쓰기 위해 애쓴다.
삐뚤어도 좋고, 느려도 괜찮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삼켰던 이야기의 첫 문장이다.
“아유, 왜 이리 삐뚤빼뚤해."
"나보다 낫구만 뭘 그래."
한숨과 웃음이 뒤섞인 소리가 들리고, 환호의 소리도 들린다.
"야아, 내 글씨 멋진데. 안 그래?"
"그려, 한석봉 저리 가라여. 내 건 괜찮어?"
서로 칭찬하며 자랑도 한다.
"내가 길거리 간판을 더듬더듬 읽었더니 딸이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 이름 석 자도 스스로 쓰지 못했던 세월이 종이 위에서 술술 풀리기 시작한다.
자존심 때문에 한글을 모른다고 하지 못하고 공연히 헛기침하며 돌아서야 했던 속상함.
텔레비전 자막이나 병원 안내판, 그 모든 글자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답답함.
사연이 다르고 글을 배우고 싶은 목적도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속상함과 답답함 속 배움의 열정이다.
글자를 쓴다는 건 단순히 배움이 아니다.
그것은 잊혔던 이름을, 묵혀두었던 사랑과 미움을, 그리움과 용서를 다시 꺼내 쓰는 일이다.
어르신들은 글을 배우면 가장 먼저 편지를 쓰고 싶어 하신다.
먼저 떠난 부모님과 남편께,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글 모른다고 그렇게 구박하던 남편 무덤 앞에서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어요."
"글 몰라도 모른 척해준 남편이 있는 하늘나라로 보내고 싶어요.
“군대 간 손자한테 건강하게 잘 있다 오라고 하고 싶어요."
"우리 딸, 아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말로는 못했어도 글로는 한 번쯤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쓰고 싶단다.
그 말에는, 말보다 깊고 다정한 글의 온기가 실려 있다.
시간보다 오래된 감정의 온도.
글자를 배우는 어르신들의 눈빛에는 잃어버린 시간들이 반짝인다.
쓸 수 없던 날들에 쌓였던 절망감과 외로움, 그 모든 것들이 글자 한 자 한 자로 풀려간다.
종이 위에 삐뚤빼뚤 적힌 글자들은
우리가 평생 배워도 닿기 어려운 사랑과 희망, 용기의 기록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나다운 모습을 찾고자 하는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늦게 배우는 글이지만, 그 손길에는 말보다 짙은 무게가 실려 있다.
한 글자, 한 문장이 전하는 가슴 깊은 울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