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두 번의 중간 평가를 받았다.(1월 10일/2월 21일). 지난 두 번째 평가는 CT와 MRI를 우리 부부의 생일날 찍었고 그날 떼어본 판독 결과지 상으로는 별문제가 없어 보여 둘이 또 부둥켜안고 울먹였다.
그날 저녁에 아웃백에서 생일 파티 겸, 중간평가 축하 파티를 열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엄마 아빠 축하 축하"
"ㅇㅇ 아, 축하해 고생 많았어, 고맙구"
"자기가 고생 많았지, 힘들 텐데 내색도 안 하고 너무 고마워. 우리 이렇게 30년만 더 살자"
"30년? 그럴까? 애들이 싫어하는 거 아냐?"
"호호, 깔깔"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 판독 결과지 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나왔는데, 주치의 선생님 면담 시 전이가 된 것 같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고 '24년 2월 간전이 된 부분을 양성자 치료로 제거한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2월 21일 주치의 선생님 면담날. 선생님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 얼굴 모습 모든 게 신경이 쓰이는데,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네요. 항암은 지금처럼 좀 더 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둘이 손을 꼬옥 잡았다. 수호천사는 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혹시 3주 간격으로 해보자고 하시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는데 현재의 루틴대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신다.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감사할 일이다.
그렇게 행복한 2달간의 휴가증을 받고 귀가해서 오랜만에 편안한 저녁을 보냈는데 다음날 토요일 아침 문제가 생겼다.
꿀맛 같은 늦잠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수호천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놀라 벌떡 일어나 살폈더니 편두통이 너무 심해 힘들다고 했다.
웬만한 건 그냥 무던하게 참고 지나가는 수호천사인데 너무 아프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평가가 있을 때마다 수호천사는 몸살을 앓는다.
평가가 있기 전부터 긴장을 하고 식사도 잘 못하고, 평가가 있는 날에는 거의 초주검이 되다시피 한다.
결과가 좋거나 나쁘거나 수호천사는 평가 다음날이면 반드시 두통이나 몸살에 시달리곤 했다. 약을 챙겨 먹으면 그런대로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너무 힘들어했다.
바로 옷을 챙겨 입고 주변 통증의학과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증상을 물어보고, 목을 만져 보더니 오른쪽 목 쪽 X-ray를 찍어보자고 해서 촬영을 했다.
X-ray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너무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시적으로 그런 것 같다고 주사를 맞고 도수치료를 받길 권했다.
현대 의학은 참 대단하다는 걸 또 느꼈다. 겨우겨우 힘겹게 걸어 들어갔던 수호천사가 아주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제법 허리도 펴고 얼굴도 밝아져서 나왔다.
"괜찮아? 조금 나아졌어?"
"끄덕끄덕"
"다행이다. 뭐 좀 먹어야지, 어제부터 거의 못 먹었잖아"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네"
"국물? 음~~~~, 그럼 복지리 먹으러 갈까?"
"응, 그건 먹을 수 있을 것 같어"
얼마 전에 처음 방문해서 맛있게 먹고 그 뒤로 서너 번 더 갔던 하남시에 위치한 '강동복집'을 가기로 했다. 10여 분 소요되는 거리라 병원에서 바로 가면 딱 점심시간이 될 것 같아 바로 복집으로 갔다.
다행히 그날도 수호천사는 복지리 국물을 드링킹 드링킹하면서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했다.
만자씨도 인퓨저가 절반 이상 들어간 상태라 식욕도 떨어지고 구역감도 있어 뭘 먹을지 고민했었는데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전날부터 굶다 시피하고 복지리를 허겁지겁 먹는 수호천사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수호천사는 내가 발병한 이후 오래지 않아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정신과 약도 매일 먹는다. 약이 없으면 힘들어한다.
만자씨도 가끔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있기 때문에 진정제를 먹곤 하는데, 수호천사는 그 정도가 나보다 심한 것 같다.
환자 본인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부정적인 상상을 하고, 걱정을 많이 해서 정신적으로 더 힘든 것 같다.
그런 정신적 고통을 참아내며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 주는 와이프는 진정 나의 수호천사다.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너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을 좀 긍정적으로 가져"
내가 늘 수호천사에게 하는 말이지만 사실 그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 잘 안다.
내가 하루라도 빨리 걱정 없을 정도로(완전한 완치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건강해지는 게 수호천사가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일 게다.
또다시 마음을 다 잡으며 더 건강해지리라는 다짐을 한다. 나를 위해, 나의 수호천사와 아이들을 위해, 나를 지켜보는 모든 (암) 환우분, 지인들을 위해..
오늘 아침(2월 24일)에는 인퓨저를 제거하고 조금 늦게 출근했다. 속이 많이 울렁거리고 입맛도 없고 제법 많이 힘들지만 어제의 일을 생각하면 고삐를 더 바짝 조여야 한다.
더 잘 먹고,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감사하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