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상대평가, 수용의 조건
“이 정도면 많이 오른 거 아닌가요?”
“물가도 올랐고, 이 성과에 이 정도면 괜찮다고 봅니다.”
“시장 평균은 넘었습니다.”
연봉 인상 시즌이 오면 HR은 누구보다 바빠지고 예민해진다.
한쪽에서는 테이블을 짜고, 다른 쪽에서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조율과 정당화를 위한 회의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조직은 하나의 표를 내민다.
‘귀하의 연봉 인상률은 ○○%입니다.’
하지만 그 숫자를 받아 든 직원들의 얼굴에는 때때로 실망이 묻어난다.
그 숫자는 ‘올랐지만’ 감정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상은 금액이 아니라 메시지다
많은 기업이 말한다.
“우리 회사 보상은 객관적입니다.”
“성과에 따라 공정하게 책정했습니다.”
“내부 기준에 따라 균형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등급별 인상률, 조직 기여도, 시장 데이터…
보상은 숫자 위에서 작동하고, HR은 그 숫자에 책임을 진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할까?
그건 보상이 단지 숫자이기 전에 ‘조직이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가’에 대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5%라는 숫자 자체보다 “이 조직은 나의 지난 1년을 이렇게 본 거구나.”라는 해석이 사람을 더 아프게 한다.
그래서 보상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연봉 인상률이 낮아서 떠나는 게 아니다
많은 퇴직 사유에 ‘보상 불만’이 적혀 있지만, 정작 면담을 해보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조직에서 자란다는 느낌이 없어요.”
“내 성장을 보지 않는 것 같아요.”
“다들 나보다 더 받는 것 같아서요.”
그건 단순한 금액 비교가 아니라 존재감에 대한 위기다.
이를테면,
이 조직은 나를 ‘한 명의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나는 노력의 크기만큼, 인정받고 있는가?
나의 성장이 숫자 말고 어떤 언어로 표현되고 있는가?
보상은 수치로 전달되지만, 사람은 그 안에 담긴 ‘존중의 유무’를 감지한다.
인사담당자는 사람의 감정을 수용하는 자리다
보상 테이블을 짜는 건 어렵다.
예산은 한정돼 있고, 성과 분포는 복잡하며, 조직 안의 정치도 엮여 있다.
그래서 인사담당자는 전략가처럼 움직인다.
수치의 균형을 잡고, 상대적 형평성을 유지하며, 때론 감정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런 전략 위에도 반드시 사람의 감정을 수용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걸.
설명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맥락을 생략하진 않았는지, “충분히 애쓰셨습니다”라는 말 한 줄이 빠지진 않았는지.
이 모든 것이 결국 보상이 끝난 뒤에도 신뢰를 남기는 결정적 순간이다.
보상은 수용의 예술이다
나는 보상 시즌이 끝나면 항상 직원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복도에서 아쉽게 웃었으며, 누군가는 아무 티도 내지 않았지만 메신저에 말이 줄었다.
숫자는 정확했지만, 사람은 여전히 해석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노트를 편다.
‘이 연봉표는 과연 이 사람에게 납득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
인사담당자는 수치를 설계하지만, 그 수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간극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게 결국 인사담당자의 인간다움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보상은 끝났지만, 납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 수치 너머의 감정을 보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