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평가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남아있다

성과평가, 기준, 감정

by 문장담당자 Mar 27. 2025
아래로

"평가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남아있다"


회사에는 평가 시즌이 있다.
성과 목표를 정리하고, 연간 실적을 수치로 환산하고, 등급을 매기고, 고과를 반영해 보상에 연결한다.
정해진 수치와 공식대로 진행되는 절차.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도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남는다.

“왜 저 사람이 B고 나는 C야?”

“저 프로젝트는 우리 팀이 다 했는데…”
“그 피드백은 공정하지 않았어.”

인사담당자인 나는 그 이야기들을 매일 듣고 또 매일 흘려보낸다.
회사에서는 그게 내 역할이니까.
결과를 수용하게 만들고 기준을 설명하는 일.

하지만 나는 안다.
평가는 숫자로 끝나도, 감정은 숫자 뒤에 오래 남는다는 걸.


기준은 명확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성과평가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SMART 원칙, 목표 가중치, 정량 평가와 정성 평가의 비율, 상대평가의 분포곡선, 조정회의의 피드백…

인사담당자는 그 모든 기준을 설계하고, 관리하고, 설명한다.
그래서 “공정하게 진행됐다”라고 말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적용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정작 피평가자인 직원 입장에서는 그 ‘공정한 기준’이 자기에게는 왜곡되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평가는 ‘결과’만으로 판단되지만, 사람은 ‘과정’ 속에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노력했는데.”
“이번 해는 유독 버거웠는데.”
“그 팀장은 내 일의 맥락을 다 알지 못했는데…”

나는 그 말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말이 사람이 일하며 버텨온 시간의 증거라고 믿는다.


평가 뒤에 남는 건, 결국 말 한마디

평가 등급보다 더 오래 남는 건 평가를 전할 때의 말투와 표정, 한 마디의 문장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한 거예요.”

“이번엔 조금 아쉽긴 했죠?”
“다음에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 말들은 짧지만, 오래 남는다.
조직은 숫자를 기억하지만, 사람은 말의 결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평가 코멘트를 쓸 때 숫자보다 마음을 먼저 꺼낸다.
그리고 자주 되묻는다.
“내가 이 문장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건 아주 작고 느린 일이지만, 조직 안에서 사람이 ‘말로 존중받았다’는 경험은 때때로 한 해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평가자 교육이 필요한 진짜 이유

요즘 많은 회사들이 성과평가자 교육을 필수로 운영한다.
공정성 확보, 기준 이해, 피드백 전달법, 평정 오류 방지…

그런데 나는 그런 교육이 결국 ‘사람의 언어를 회복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낮게 평가하는 이유’보다 ‘다시 잘해볼 수 있게 격려하는 말’을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B등급의 의미’보다 ‘이 사람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말해주는 법을 어떻게 익힐까?

그건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 태도와 언어의 문제다.

인사담당자는 그 감각을 조직 안에서 회복시켜야 한다.
숫자가 아닌 말로 사람을 살리는 감각.


평가가 사람을 해치지 않기를

나는 한 번도 성과평가가 완벽하게 받아들여진 조직을 본 적이 없다.
성과평가는 ‘수용’이 아니라 ‘소화’의 문제다.

그리고 그 소화를 도울 수 있는 건 결국 HR의 언어, 평가자의 태도, 조직의 분위기다.

그래서 나는 매년 평가가 끝난 후 이렇게 다짐한다.

“평가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 이야기가 상처가 아니라 성장의 언어가 되도록 나는 오늘도 사람을 관찰하고, 문장을 고민하자.”


성과를 숫자로 정리하는 건 회사의 일이다.
하지만 그 숫자에 담긴 사람의 감정까지 함께 안아보려는 건 인사담당자의 사명이다.

나는 오늘도 평가표를 정리하면서 그 너머에 남겨진 말 한마디의 온도를 생각한다.

숫자보다 오래 남는 건,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이전 01화 퇴근 후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