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메시지, 조직의 감정기록
“퇴사하겠습니다.”
메일 한 줄, 문자 한 통, 때로는 직접 찾아와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
퇴사는 조직 안에서 ‘작은 이별’처럼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결심이, 그리고 침묵이 담겨 있다.
나는 인사담당자다.
이직과 퇴사를 매일같이 마주한다.
사직서를 받고, 퇴사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요청하고, 때때로 퇴사 면담도 진행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퇴사자는 단지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조용히 메시지를 남기고 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말이 마음에 남는다.
“퇴사는 선택이 아니라 신호였다”라고.
퇴사는 갑자기 찾아오는 결심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 통보를 갑자기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퇴사는 천천히 축적된다.
이를테면,
반복되는 무시
기여에 비해 돌아오지 않는 인정
성장하지 않는 직무 능력
회피되는 피드백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된 조직
이런 것들이 마음속 어딘가에 쌓이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아, 나는 이제 여기서 나를 키우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퇴사는 떠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이다.
퇴사자에게 묻지 말고, 기록해야 한다
많은 회사들이 퇴사 면담을 한다.
“무엇이 불만이었나요?”
“어떤 점이 아쉬우셨나요?”
“우리 회사는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할까요?”
하지만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 질문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퇴사를 결심한 사람에게 회사의 관점을 묻는 건 어쩌면 회사 중심의 태도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으려 한다.
대신 기록하려 한다.
이 사람이 어떤 경로로 입사했고, 어떤 직무를 맡았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떤 기대를 접었는지.
그 흐름을 차곡차곡 쌓아두면 퇴사자의 말은 조직의 기록이 되고, 그 조직은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인사담당자는 이별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나는 한 사람의 입사부터 퇴사까지 인사담당자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끝을 지켜본다.
입사 때의 긴장된 첫인상, 성과가 올라갈 때의 빛나는 눈빛, 그리고 퇴사 때의 조용한 말투까지.
그 모든 장면은 단절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서사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실패가 아닌 완성으로 바라보려 한다.
이 사람이 이 조직에서 배운 것, 떠나기 전까지 지켰던 태도,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추었던 마음.
그건 이직 시장에서 평가되지 않지만, 인사담당자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자산이 된다.
퇴사를 나쁘게 보는 문화는 조직을 늙게 만든다
어떤 회사는 퇴사자를 “배은망덕하다”라고 말한다.
어떤 회사는 퇴사 이후 연락을 끊고,
어떤 회사는 경력기술서에 그 회사를 적지도 못하게 한다.
그건 모두 조직의 불안이다.
내부의 단점을 들킬까 두렵고 나간 인재가 더 잘되면 위협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퇴사는 실패가 아니라 순환이다.
한 조직에서 배운 사람은 다음 조직에서 더 잘하게 되고 그게 다시 시장의 평판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퇴사자에게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한 마디가 조직과 사람 사이의 마지막 인사를 가장 아름답게 남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조직 안에서 또 다른 ‘작은 이별’을 준비한다
인사담당자는 끝없이 이별을 겪는 자리다.
하지만 그 이별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인사담당자라면 그 조직은 오래 건강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사직서를 보며 다짐한다.
“이 사람의 퇴사는 조직에 남겨진 메시지다.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사람을 위해 반응하는 인사담당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