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나를 괴롭히는 두 가지의 큰 문제를 정산하고 나니 판단을 유보하는 게 아니라 실패라고 전제하고 쓴 글들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실패라고 결론 짓고 싶지는 않다. 나름의 좋은 점들을 또 적어보자면 '에이, 네가 욕심이 과하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은 매년 내 생일은 물론 친정 부모님의 생신 때마다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준다. 친정 부모님에게 살갑게 하거나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역국 의식'은 매번 빼먹지 않는 게 참 고맙다. 취사병 출신에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집안의 요리를 전담하고 있다. 나는 냉장고에 음료와 디저트 말고는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다. 오징어전, 오무라이스, 각종 찌개, 샐러드... 각종 생활형 요리들. 아마 내가 요리를 해야 했다면 95%는 레토르트 식품 활용이었을텐데,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첫째의 경우 초기 이유식을 만든 것도 남편이었다. 이후로도 아이의 식단을 상당 부분 책임졌다.
남편은 온실 속의 화초 비슷하게 자란 나와는 달리 생존력도 강하다. 밖에 나가서는 잘난 척 하지만 사실 가정 내 생활력으로 따지면 내가 한참 모자란 편이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다 하면서 풍족하게 자란 나와 달리 남편은 다소 빠듯하게 자란 듯 하다. 그래서인지 항상 돈도 아껴쓰고, 음식 남기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물건도 한 번 사면 오래도록 쓴다. 대학 때 반지하인지 옥탑방인지 살 때 짬뽕 한 그릇을 시키면 다음 날 국물까지 재활용해 먹었다는 이야기부터 노가다부터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으면 그런 면에선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혼자 힘으로 좋은 대학까지 간 걸 보면, 나만큼 서포트를 받았다면 얼마나 더 잘했을까 상상도 해봤다.
육아휴직, 육아휴직 노래를 부르길래 초반에는 반대하다가 첫째가 한창 몸으로 놀아줘야 할 나이가 됐을 때 찬성했더니 육아에 최선을 다해준 것도 고마운 부분이다. 처음에는 살림을 도와주던 엄마가 사라지면 불편할 것 같았고, 요리는 잘하지만 치우는 데는 영 재주가 없는 남편이 살림을 전담했을 때 어떨지 걱정됐다. 하지만 기우였고, 술과 둘째 임신을 비롯한 몇몇 (치명적인)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제법 평온했다. 첫째 육아뿐만 아니라 양팔통 사주로 외부 활동하기 바쁜 와이프 육아에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묵묵히 견뎌주었다.
기본적으로 소통이 잘 안 되지만 가끔은 마음에 박혀 오래 남는 말도 해줄 때가 있다. 3년 여 간 터널이 조금 긴 편인데, 한 번은 내가 삼재도 아닌데 산 넘으면 계속 산이 나온다고 토로했더니 이런 말을 해줬다. "'생즉사 사즉생'은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뜻이지만, 나는 이렇게도 읽히더라. 산 것 같지만 죽어있고,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다고." 아직도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이긴 하지만, 이 말은 두고두고 위로가 될 것 같다.
아빠도 과거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인생은 365일 중에 한 열흘 정도만 즐거운 일이 있어도 성공적인 거라고. 대체로는 지루하고 종종 짜증이 나다가 한 번 해가 반짝 뜨면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게 삶이라고. 결혼도 일상이니까, 똑같이 대입해볼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면, '사랑의 시작은 열정이고, 사랑의 지속은 인격이며, 사랑의 끝은 성실이다.' 인격의 도야와 성실의 실천을 다시 되새겨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성패에 대한 판단은 할 만큼 해본 후에 해도 늦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