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 기억의 거울: 내 안의 당신과 마주하다
새벽은 언제나 그랬듯 약속이라도 한 듯 창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차가운 새벽빛은 잠 못 이루던 영혼에게 결코 안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히려 낯선 손님처럼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와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더니, 방을 싸늘하고 투명한 기운으로 가득 채웠다. 그 투명함 속에서 밤새도록 이어진 긴 이야기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더욱 선명해졌다. 삐걱거리는 의자는 이제 너무나 곧고 날카롭게 느껴졌고, 낡은 책상은 차갑고 엄격한 표정을 짓는 듯했다. 손때 묻은 책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너무나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어젯밤의 깊고 아득한 여운은 방 안 구석구석, 그의 옷깃과 머리카락 끝에까지 스며들어 사라지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그는 침대 끝에 멍하니 앉아 귀 기울였다. 귓가에 맴도는 정적은 단순히 소리 없는 공허가 아니었다. 그것은 밤새도록 이어졌던 아버지와의 대화, 그 진동하는 파장과 메아리로 꽉 채워진 듯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형체 없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그의 얕은 숨결 속에, 가슴을 두드리는 심장의 규칙적인 고동 속에,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 희미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남긴 온기, 혹은 잊지 못할 질문과 함께, 훨씬 더 어렵고 잔인한 질문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그가 평생을 찾아 헤맸던 답, 혹은 피하려 했던 거대한 수수께끼가 이제 막 수면 위로 떠오른 듯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차가운 유리는 그의 지친 모습을 그대로 반사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설고 이질적인 인물이 서 있는 것 같았다. 거울 속 눈빛은 너무나 깊이 지쳐 있었고, 고작 서른다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삶의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듯 지나치게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어깨는 단순한 육체적 피로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다니던 무겁고 해소되지 않은 말들의 짐 때문인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거울 표면에 댔다. 마치 이 차가운 경계 너머로, 어린 시절 그가 버려두고 온 순수한 모습과 마주하고 싶다는 간절함처럼.
그 순간, 거울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했다. 유리가 깨지거나 형태가 뒤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눈빛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거울 깊은 곳, 그 차가운 표면 너머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아주 오랫동안 외면했던 어린 소년의 모습인 듯했다. 목마름으로 가득 찬 눈동자와,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혼자 삼켜야 했던 외침을 가슴에 품은 채.
"너, 그와 똑같아지고 있어." 거울 속의 소년이 깊은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그 음성은 차갑고도 슬펐다.
"누구… 누구와 똑같아진다는 거야?" 그는 목이 메어 속삭이듯 물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아버지와 말이야. 침묵하는. 고통을 무거운 짐처럼 안고 숨기는. 말이란 그저 모든 것을 부수기만 한다고 믿는 바보 같은 어른 말이야."
그 문장은 예상치 못한 강도로 심장을 파고들었다. 마치 수십 년 묵은 상처를 한순간에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격렬하게 움직였다. 어린 시절부터 결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허망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는 이미 아버지와 같은 위치에 서 있었다. 마음을 닫고, 두려워하고,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한 채 대화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는 모습. 모든 것이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한없이 초라하게 들리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답했다.
"하지만 이미 그래지고 있잖아." 거울 속 아이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의심, 두려움, 세상으로부터 닫힌 마음 — 이 모든 것은 한 줄로 꿰어진 족쇄와 같아. 너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정말 그분의 진심까지 이해했니?"
그 말들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깊은 도전이었다. 그는 거울 앞에 선 것이 적이나 환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로 나누어져 고통받는 자신의 마음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아이는 그가 외면하고 싶었던 가장 아픈 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해했어." 그는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지 못하며 천천히 말했다. "그분도 결국 한 명의 사람이었다는 걸. 실수하고, 두려워하고, 서툰 사람이었다는 걸. 나 역시 같은 사람이야. 하지만 나는… 그분과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어. 아니, 선택해야만 해."
거울 속 소년은 그의 눈을 오랫동안 깊이 들여다보았다. 마치 그의 대답 속에 숨겨진 진정성을 가늠하는 듯. 이내 소년의 입술이 아주 미묘하게 움직이더니, 길고 고통스러웠던 세월 끝에 비로소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그의 가슴을 따스하게 채웠다.
"네가 선택할 수 있다면," 소년이 속삭였다, "넌 그분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존재야. 그러니… 그 소중한 자유를 헛되이 낭비하지 마."
그 말을 끝으로 거울은 다시 평범한 유리판으로 돌아갔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여전히 성숙하고 지쳐 있었지만, 이제 그의 눈동자에는 전과는 다른 작고 빛나는 불꽃이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밤새 울렸던 그 시간은 단지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었다. 진짜 싸움은 앞으로 놓여 있었다. 타인의 목소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응답하지 않고 버려두었던 자기 자신의 어린 모습과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싸움이었다.
그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테트라드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쓰여지는 글은 낯선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였다. 더 이상 공허를 채우기 위해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았다. 고통에 대해, 오랜 시간 품어온 두려움에 대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꿰뚫고 마침내 찾아낸 희망에 대해 썼다. 변명이나 자기합리화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순수한 기록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종이 위에 무겁게 놓였지만, 그 무게는 진정성과 진실성에서 오는 특별한 편안함을 주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는 온몸으로 느꼈다. 자신이 쓰고 있는 이 책은 타인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연대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고독하지만 찬란한 길이리라는 것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삶의 새로운 의미가 깊게 뿌리내렸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포로도, 도망자도 아니었다. 그는 이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있는 다리가 되었다. 아버지의 묵묵한 목소리와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를 잇고, 거울 속의 슬픈 어린아이와 창가에 선 단단한 어른 자신을 잇고, 끝없는 어둠과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잇는.
그리고 바로 그 다리 속에,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그의 진정한 힘이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