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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의 맞불 작전

by 유호현 작가

와인이 보르도를 떠올리게 하듯, 내게 사과는 언제나 가을의 청송이다.

주왕산으로 가다 보면 세척 사과를 파는 노점이 많다. 산행 중 한 알 배어 물면, 서늘한 공기와 어우러져 입안이 맑아진다. 크다고 사과가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청송 사과는 크면서도 아삭하고, 단맛과 산미가 조화를 이루어 상쾌하다.

무엇보다 압권은 색깔이다. 선명한 붉은색. 마치 주왕산의 붉은 단풍에 이염이라도 된 것 같다.


잎이 단풍이 되어가는 과정은 시련이라 할 수 있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잎은 불꽃처럼 타오르며 떨어진다. 해마다 많은 이들이 잎의 마지막 불꽃을 배웅하러 산을 찾는다.

그러나 나무는 죽지 않는다. 뿌리를 더 단단히 움켜쥐며 내년을 준비한다.


2018년과 2019년, 단풍 같은 불길이 우릴 덮쳤다.

건강하던 장인어른이 림프종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2019년 8월에 돌아가셨다.

설상가상으로 겹쳐온 어려움 속에서 숨조차 쉬기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우리가 세운 다짐은 분명했다.


절대 우리를 고립시키지 말자.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소박하지만 정성을 가득 담은 식사를 함께 했다.

친구들의 장점을 시처럼 적어 카드로 보내기도 하고, 작은 수고 하나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린 서로에게 매일 애정 표현을 했다.

울어야 할 때는 울었고 웃어야 할 때는 반드시 웃었다.


작은 후대와 배려 속에서 우린 자존감을 지켜냈다. 그것은 사실 남들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시련의 불은 열심의 불로 끄는 것이다. 즉 열심의 맞불 작전이다.


올해도 청송의 단풍은 불꽃처럼 타오를 것이고, 청송의 사과는 그 빛을 담을 것이다.

올해 가을엔 꼭 가야겠다.

그 멋있는 단풍으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지 않겠다.


단풍은 지고, 사과는 익는다.

나무는 살아남듯, 우리의 삶도 시련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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