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시골집

명절에게

by Tempy

헤어지는 듯했다.

같이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붙잡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헤어지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인생 첫 명절의 기억은 엄마 아빠의 두 손을 잡고 시골로 내려가는 길부터였다.

평소보다 예쁜 옷을 입었고, 휴게소에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설렘과 따스함이 엿보였다.


고속도로 위. 멀미에 지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엄마를 지나, 전력을 다해 뛰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품으로 파고들기 바빴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친척들과의 인사, 화목한 공기, 상다리가 부러질 거 같은 맛있는 밥.

나에게 명절은 그런 풍경이었고 그것이 당연했다.


한 해가 흐르고 시간이 지나 어린아이였던 내가 성인이 되었다.

설과 추석이면 시골로 향하던 발걸음은 입시다, 일이다라는 이유아래 차츰 줄어갔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나도 좀 쉬고 싶다며 시골에 가지 않을 명분을 늘어놓기 바빴다.

올해 정도는 내년까지는 하며 찾아뵙지 않아도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도 그 자리에 언제까지 있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어리석음이었음을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세월이 알려줬다.

“올해는 내려올 거지?”라는 이모의 물음에 알겠다는 답을 하고 오래간만에 다시 귀성길에 올랐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분위기와 풍경을 지나 나의 시골집에 도착했다.


위치는 그대로인데 어딘지 모른 낯선 모습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오래된 아파트 주변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있었다.

강렬하게 번쩍거리는 신식 건물들을 뚫고 지나간 탓이었을까.


빛이 바랜 할머니의 오래된 아파트가 나를 맞이해 줬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흐른 걸까.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에도 여기서 계속 있었다고, 기다렸다고 소리 없이 외치는 듯했다.


낡은 현관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순간 나는 일에 치이는 직장인이 아닌 손녀이자 이모, 삼촌들의 어린 조카로 돌아간다.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의 품에 안겨 익숙한 살결에 흙 내음이 섞인 냄새를 폐까지 들이마시고 나면 그제야 돌아왔다는 걸 실감했다.


나의 눈은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그사이에 할머니의 뒷모습은 더욱 작아졌구나.

이모와 삼촌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씩 더 늘었구나.

이제는 많은 걸 알아채버리는 어른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었구나 하며 애써 웃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아 정겨운 이야기들을 나누면서도 가슴 한 켠이 아렸다.


사람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내가 보는 정겨운 풍경조차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겠지.

나의 차례가 될 때까지 이 안에서 몇 번의 헤어짐을 맞이해야만 할까.

다 같이 명절에 웃었던 시간만큼 울어야 하는 시간이 돌아올 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조금만 더 지금의 순간을 붙잡고만 싶었다.

아주 찰나라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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