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

매 초 24번 반짝이는 공간에서 우리의 삶으로 흘러들 때

by 재용

안녕하세요.

저의 첫 에피소드인 < 영화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의 첫 글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선 영화와 구원에 관한 저의 생각, 그리고 제가 구원받았다고 느낀 영화들 그리고 그 영화에 관한 리뷰와 사유를 바탕으로 연재해나갈 예정입니다. 이번 첫 글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구원은 어떤 이미지인지, 그리고 영화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



Question 1. " 당신에게 구원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나요 "


우선 저한테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거창하게 다가오진 않는 것 같아요. 물론 그 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나 종교적인 울림도 분명 있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경험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저에게 구원이란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따스함’, ‘무언가를 넘어 다가오는 눈빛’ 같은 사소한 것들이에요.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 모든 것이 우주처럼 다가오는 심상이기도 하잖아요.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저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더 나은 내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그 믿음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요.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나를 끊임없이 부정하게 만들기도 하죠.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어떤 특별한 경험이나 상태, 혹은 괜찮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아예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시기를 지나왔고요. 그랬을 때, 그런 우리에게 “행복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해주는 혹은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게 ‘구원’처럼 다가와요.


Question 2. " 영화는 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


프로이트는 마음의 상처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들러는 트라우마의 이론을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즉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고, 사건을 다루고, 경험을 다루고, 이미지를 다룹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존재들이고, 그럴 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픔, 상처, 후회, 고독, 회복을 다룬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독들은 그런 과정을 경유해서, 우리가 괜찮아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죠. 그 방식은 저마다 달라요. 침묵할 수도 있고, 포옹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고, 그저 다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어요.


저는 영화가 그저 단순한 시청각 매체가 아니라고 믿어요. 그 스크린을 넘어 우리 삶에 와닿는 순간이 분명히 있어요. 그 순간, 영화는 매초 24번 반짝이는 공간에서 우리 삶으로 들어와, 더없이 반짝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는 그 무엇이든 이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시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게 되죠.


저는 원래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을 반박했던 아들러의 관점에 더 기울어져 있었어요. 하지만 나도 모르게, 우리의 행동들이 과거의 경험에 의해 불가피하게 형성된다면,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중요한 건 우리가 여전히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거예요. 트라우마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 상처를 꿰매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강인함, 그렇게 다시 살아가는 용기. 그게 바로 아들러의 입장이죠. 우리는 트라우마에 지배받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어요.


우리는 불완전하고,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인물들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있죠. 우리는 그들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구원받는 모습을 통해 어쩌면 우리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영화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제각각의 사람을, 그 영화를 보기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영화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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