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은, 밤이 지닌 본질적 어둠에 등을 달아 밝힌다. 밤의 한가운데 달이 매달려 있다는 것은, 밤을 밤으로 완결시키지 않고, 고달픈 삶에도 서정의 빛을 쪼여주는 것 같다.
농경의 밤은 초경(初更)을 넘기고 이경(二更)이 되면, 행복한 몽상에 젖어든다. 달로 만든 등불이 동구밖에 내걸린 날이면, 부푼 가슴을 주체할 수 없는 옛 청춘들은 풋풋한 보리밭에서 사랑했다. 따스하게 등불이 내리고 뜨거운 몸뚱이가 바람을 만들어 낸다. 고요함 중에 태어나는 바람의 소용돌이는 가볍게 풀어지고, 보리밭의 가장자리로 퍼져나간다. 은은한 빛이 마음을 부드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밤이 지닌 본성은 어둠에 머물지 않아서, 슬며시 그 어둠을 밀어낸다. 그리고 달이 비추는 어스름한 밝음에 기대어 활개를 친다. 밤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달빛의 언어를 받아들일 줄 안다는 것이다.
달에 대해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알고 있다.
오래전, 선암사의 지허 스님과 차를 마시며, 우리는 달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나는 달을 품고 있는 지명에 대해 자분자분 말했다. 스님도 그 의미를 찬찬히 음미하며, 마음을 다독거려 주셨다.
전남 순천시에는 지역 일대가 모두 달의 축복을 받은 곳이 있다. 달로 등을 만들어서 달았다는 월등(月燈).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절절히 나를 꼭 안게 된다. 직선으로 내리 꽂히는 빛은 잔혹할 만큼 단호하다. 그러나 달빛은 고루 퍼지며, 난만(爛漫)한 숨결로 온순하다. 나는 월등(月燈)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옆의 마을들은 모두 달과 더불어 산다. 달그림자가 계수나무에 걸리는 계월(桂月), 그리고 구름과 달이 겹치는 어스름한 운월(雲月). 흐뭇한 달빛이 비추는 아름다운 숲, 월림(月林). 그리고 달빛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용이 꿈틀대는 월룡(月龍)....
이들은 모두 자연을 직관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명명한 아름다움의 극치다. 사람 사는 마을이 어떻게 이처럼 시적이고 신화적인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어둠에게 물어서 될 일이 아니다. 바로 은빛으로 고여있는 달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달의 여인은 버드나무가 있는 냇가 마을에 산다. 나뭇가지에 앉은 꾀꼬리는 흔들림에 리듬을 맞추면서도, 냇물의 소리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 정겨운 풍경을 매일 밤 달이 내려다보고 있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을 들으며, 밤을 올려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