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무 여운 없이 유월을 지나갔고
나는 미처 사라지지 못한 문장처럼, 그 계절 끝자락에 걸려 있었어
그날, 잔상처럼 번지던 오후의 광휘 속에서
나는 너의 눈동자를 바라보지 못한 채
벼랑 끝의 말들을 삼켰어
하릴없이 조용하던 바람마저
너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껴져
나는 그 잎새 하나도 맘 놓고 밟지 못했지
고작 몇 겹의 침묵으로 당신을 보내야 했고
그 잎맥 속엔 아직도 너의 잔열이 남아 있었는데,
나는 계절의 음영 속으로 천천히 낙화했어
그 순간이 아직도 가끔 꿈처럼 떠오르지만,
깨고 나면 여전히 너를 닮은 바람이 부는 유월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