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밤을 보내요
마지막 글은 연료를 더 채워 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한없이 미뤄두었어요. 무슨 연료를 바랐는지 참, 매주 글을 내려보겠다는 당찬 마음가짐이 무색해지는 부끄러운 저녁입니다. 계절이라는 이름 속 무심하게 또 한 번의 겨울이 찾아왔으며 그렇게 어김없이 첫눈은 내렸고, 저는 새로운 만남을 핑계 삼아 설렘을 포장했어요. 당신이 기뻐해줄 표정을 상상하며 포장지를 고르고, 너무 과하지는 않은지 행여 부담이 되지 않을까 여러 고민을 곱씹어 넣어봐요. 상자의 빈 공간은 있을지언정 내 작은 마음과 고민으로 채워봤어요. 이렇게 또 한 해의 끝을 맞이해 봅니다. 좁은 거리가 오늘따라 더 가득 차 보여요. 외투가 두꺼워지고 가로로 늘어진 행인들로 채워진 밤이네요. 주변을 둘러보니 서로 다른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품들이 무덤덤한 거리에 색감을 입히네요. 그렇게 저도 조금은 밝은 옷으로 저녁을 맞이하고 있어요. 오늘은 그들과 어울려 밝은 밤을 거느리곤 해요.
이름 모를 당신을 위해 쓴 글이 어느덧 마지막을 달려가고 있어요. 당신의 올해는 안녕하셨나요? 당신의 안녕을 궁금해하며 제가 보낸 올해를 돌아보려 해요. 지난 연말에 다짐했던 것처럼 올해는 일을 위해 살아왔어요.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일에 매진했네요. 숨을 돌리고 싶은 마음보다는 제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한 움큼이었어요. 그렇게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니 원하는 자리를 얻었고 새로운 인연도 찾아왔어요. 다만, 누군가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밤을 함께한다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이었던 걸까요? 깊은 마음을 준 만큼 더불어 깊은 상처만 남은 여름을 보냈네요. 여름의 상처는 꽤나 움푹 파여있네요. 결국 시선을 돌리는 것은 나에게는 아직 사치라는 마음과 함께 또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길지 않았지만 생각을 멈출 만큼 덧없이 일을 하며 가을을 보냈어요. 사랑했던 사람의 증발과 처음 경험했던 교통사고까지 요동치는 심장을 붙잡으려 생각을 멈추고 살았고 멀리 움직이지 않으며 몰두했어요. 애석하게도 움직이지 않으니 움직이는 것을 어색해했고, 영화와 멀어지니 상영관에 들어가는 시도조차 한없이 멀어졌네요. 그렇게 봄,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경계선이 모호한 계절들이 자연스럽게 저를 지나치도록 그들을 의식하지 않았어요. 저는 오로지 글과 음악에 취해 겨울을 기다렸지요. 눈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첫눈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있네요? 내리는 눈과 함께 추억을 포장했어요. 함께해 준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스운 연말 인사를 전해요. 어디 숨어있다가 등장하셨나요. 늦지 않게 와주셨어요.
코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中
우린 오늘 아무 일도 없겠지만
그대가 원한다면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아침을 나와 함께 해줘
다시 한번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나를 믿고 있다면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아침을 나와 함께 해줘
지난 며칠 동안 참 신기한 일들이 있었어요. 어디 사연이라도 내보내고 싶을 정도의 에피소드처럼 소소한 행복과 웃음을 주고받았어요. 버스 요금이 없었던 선생님, 첫눈 속에서 서로를 담아냈던 노부부 선생님들, 하필 내 발 앞에 지갑을 떨어뜨린 은행원 선생님 그리고 눈으로 가득 채운 새벽에 응답해 준 멋쟁이 택시 기사님까지. 용기 낸 작은 선행들이 이어져 조금 더 따듯한 연말을 만들어냈어요. 이렇게 모아둔 따스함이 당신에게 전해질까요? 도착 예정일은 없지만 돌고 돌아 시간과 계절을 타고 당신 앞에 내려왔을 때 비로소 당신을 미소 짓게 한다면 올해는 그걸로 마무리할게요. 그럼 저 먼 길을 다시 돌고 돌아 또다시 저에게 돌아올 수 있겠지요? 이렇게 허무한 꿈을 꾸며 글을 내리곤 해요.
시간이 한참 걸려도, 아직은 스스로가 어려워도, 행여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하여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기로 해요. 그런 당신을 찾아 알아가는 일상을 제가 보내기로 할게요.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가 함께 할 밤은 꽤나 아름다울지도 몰라요. 저는 또다시 한번 헤매러 떠나요. 꿈을 발판 삼아 당신과 함께할 낮과 밤을 그리러 가볼게요. 그럼 당신의 올해는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