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심

by 별빛단상


애심I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의 혼란기 까지를 그린 선우휘 원작소설 ‘불꽃’에서

주인공 현의 부친이 동굴에서 벗어나 만세를 부르다가

총 맞아 죽어가는 아들의 죽엄을 두고 혹부리 할아버지가 내뱉은 “저건 내 자식이 아니다.”하는 탄식의

의미를 책을 읽을 고등학교시절을 훨씬 지난, 30년이나 지내고 나서야 진정으로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매양 가슴이 아리다거나, 혹은 애 단장을 끊는 가슴 저리다는 말은

그 의미심장함은 물론이고, 직역한 해석까지도 난이 하여 홀로 애닯고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순과 종심의 나이에 반추하여 보면..

지천명에도 그랬고..

불혹에도 그랬거니와,

하물며 20세 약관에도 무언가 부족하길,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생각에 각고의 시간을 요하였다.


물론,

생각하고 원하는 바는 점점 나 하나에서, 너 혹은 우리에로 변화하긴 하였으되

그 본질이 크게 벗어나질 않았기에 지금도 그 거울은 여전히도 존재한다.


청신 새벽의 미명아래에 풀잎이슬을 보며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고

주절주절 열리는 오이 밭, 햇빛 그늘에서 철 지난 유행가 곡조를 흥얼거리고도 싶고

때아니게 생각나는 막걸리 한잔에 목축이고 늘게 늘여지게 오수를 즐긴다 한들..


한나절이면 뚝딱 알 수 있던 노래가사 하나를 암송 하는 데에만 몇날 며칠이 걸리고

보이지 않던 점 하나가 신체 일부에 생겨나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리던 뒷동산 중턱에서 벌써 숨이 차오르다


뭘 바라거나 기대하지도 않고 만나면 그저 반가워서 키득키득 참을 수 없고

심연에 그려지는 아스라한 아지랑이에 수줍은 미소가 있어서

백사장 한복판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구름사이 조각배에도 변함없이 그 거울은 선명하다.


땅 끝 바다에 지는 붉은 노을이 서럽다.

채송화 봉선화가 그 빛이 너무 붉어 서럽더니, 이제는 그 흔하던 꽃 한 송이 보이지 않음이 서럽다.


논두렁 밭두렁을 가로질러 둠벙에 다다르면,

토담 안 공덕비를 두고 뜻 모를 상형문자에 제각기 토를 달며 제 것이 정답인양,


장마에 길 잃어 갈데없는 양어장 붕어 한 마리,

검정고무신을 명줄삼아 한낮을 연명한들, 빌딩숲 미로에서 상전벽해란 옛말이 아니구나!


초록빛 들녘

작은 언덕을 넘어 철쭉 가득하던 동산에 꽃씨를 뿌리고자 함은,

그냥 무심히 흐르는 세월의 강물에

물결 따라, 무늬 따라 일엽편주를 얹는 마음으로


고사리 같은 내 작은 미래에도 청신이 있고, 서리 내리는 벌판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음 하는 바램 이다.



애심II


어리광이 뚝뚝 떨어지는 손자에, 점방에서 급히 산 쵸코렛 하나를 조막만한 손에 쥐어주고,

차마 떨어지지 아니하는 발걸음을 돌리기가 천금 같다.


어미 아비의 그늘이, 할머니나 할아버지 품이 어디 그만 하랴 만은...

생업에 제 바쁜 걸음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도, 아니라면 생면부지 남에 비교 하랴 ?

다행으로 아직은 조부모로 운신이 천만으로 다행인지!


가다가, 안쓰러운 마음과 소망 하는바가 절반씩 어우러져, 울화가 치밀어도 울화와 서러움 까지를 토닥인다.


부족한 키 가 냉장고에 당치 않아

제 허리를 쿡쿡 찍어

“할미! 여기 좀 안아봐!!”하고 냉장고 문을 열고 서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진난만한 말썽꾸러기인데,


벌써 몇 개씩이나 먹은지라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지?’하는 노파심이 먼저 앞 서

“안 돼!!”라고 거절 할 량이면 ‘으앙~’하고 울음으로 무기 삼다.


결국!

노획물은 약탈하고, 배탈 날까 걱정 일뿐 안쓰럽게 지켜본다.


초롱초롱 빛나는 천사 같은 눈으로 세상이 맑고, 또 밝게 투영되기를 기원한다.

부리부한 눈은 올곧게 혜안의 중용이 지켜지길 기대한다.


‘부릉부릉’ 온 방안을 헤집고 돌아다는 그 눈 에서 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보고,

내 작은 아집을 본다!


인생을 살면서,

굴곡진 길과 막다른 길!

혹은 넓은 대지의 황량함과 초원의 푸르름을, 공경하고.. 때론, 경외하기도 하면서..

내 인생의 항해에서 번뇌와 꿈을 함께 켜켜이 묻어가던 것처럼,


내 또 다른 자아에서 바른 성찰을 지킨다!


어린 시절

마중물 한바가지를 붓고서, 한참을 펌프질을 하고 나서도, 시루로 만든 정한수를 걸러내듯이..


내 바람 ‘風’이

그의 바람 ‘風’이 되려는지 알 수 없으나 정성을 심고자 한다.


심연이 젖는 아린 가슴으로..

내 또 다른 지킴을 위하여, 봄비 오는 오후에 촉촉이 젖는 하늘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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