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을 오가며, 경기도에서 일을 해왔다. 나에게 서울은 특별한 여행지가 아니라 밥 먹듯 드나들던 도시였고,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동네가 유난히 많았다. 그래서인지 서울은 늘 낯설지 않은 곳이었고, 어디든 금세 적응했다.
하지만 몇 년 전,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삶에 대한 지침이 겹쳐 공황발작이 심해졌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이유 없이 빨라지는 순간들이 반복되자, 나는 더 이상 도시 안에 머물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경상도의 작은 마을로, 도망치듯 내려갔다.
그곳은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동시에 세상과 한 발짝 떨어진 듯한 곳이었다. 버스 배차 간격은 길었고, 밤이 되면 소음은 줄어들고, 귀뚜라미 소리뿐이었다. 사람보다 자연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고립된 듯한 독립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아침이면 풀 냄새를 맡고,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살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공간에서만 찾아오던 공황발작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불안은 자연 속에서 조금씩 숨을 고르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2년을 살았다. 그 시간은 분명 나를 살게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무서워 떠나온 내가 결국 다시 찾게 된 것은 사람의 온기였다. 가끔 안부를 전하다가 오랜만에 약속을 잡았던 지인들, 시시콜콜 술 한 잔을 걸치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 매번 본가에 갈 때마다 밥을 두 공기씩 챙겨주던 엄마, 나를 보자마자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흔들어대는 강아지. 그리움의 끝에 남아 있던 모든 것들은 결국 사람이었다. 그래서 2년의 시골 생활은 무의미하게 끝나버렸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다. 나는 그 시간을 내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리프레시의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으니까.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마치 내 존재를 알리듯, 익숙한 풍경 속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사람을 만나 감정 소비를 하는 것도 싫고, 상처받는 것도 여전히 두렵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붐비는 사람들 속으로 다시 들어와 버린 나 자신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인간관계 바운더리는 너무 넓었다. 적당했어야 했는데, 넓은 마음 탓에 깊이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이번 도시 생활을 시작하며 다짐했다. 나만의 인간관계 바운더리를 조금씩 줄여가며, 나를 다치지 않게 하겠다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아직도 두려운 마음은 남아 있다.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공황발작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를 챙겨주고, 사랑해 주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용기를 낸다. 불안해서 자주 넘어질지라도, 사람들 곁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여전히 감사한 일이라고 믿고 싶다. 혼자 버티는 삶보다, 함께 숨 쉬는 삶이 나에겐 더 어울린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들로 인해 받은 상처가 많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어쩔 수 없이 정이 많게 태어난 사람이기에, 그것 또한 내가 받아들여야 할 삶의 일부라는 것.
오늘도 나는 2호선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여전히 조금은 떨리지만, 그 떨림을 품고 용기를 가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