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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모 Dec 23. 2024

어머니의 갈치 반찬



칼칼한 갈치조림을 생각한다. 실한 갈치가 두툼한 무와 감자, 묵은지와 어우러져 온통 빨갛게 자글거리는 소리는 절로 뜨신 밥과 소주 생각이 나게 한다. 두근거리는 손끝으로 자작한 양념국물을 뜨고 밥 위에 슥슥 비벼선 갈치 살점 하나를 크게 얹어 먹는다는 건, 푹익은 무조각과 묵은지를 곁들이는 그윽한 한입이란 건, 소리 없이 입안 가득 번지는 행복한 비린내가 아닌가. 이마에 땀이 살짝 맺히는 매콤하고 자극적인 유혹이 아닌가. 담백한 갈치구이는 또 어떠한가. 노릇하게 잘 구워진 몇 토막의 구이는 상상만으로도 고소한 내음이 난다. 무방비로 코를 킁킁대며 따라가고 싶은 대책 없는 이끌림, 은색의 비늘이 적당히 탄화되고 노릇하게 반짝거리며 빛을 뿌리는 그 순간에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큼지막한 구이 살을 발라 먹을 때의 저릿한 식감을 굳이 말로 설명해 무엇하랴. 보리차에 밥을 말아 구이를 얹어 먹어도 좋고, 잘게 부수어 밥에 비벼도 좋은 것이 구이 아닌가. 


갈치 반찬을 생각하면 가난했던 옛일이 생각나기도 전에 입안 가득 침부터 고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어린 시골집, 사면이 산과 들로 막힌 충청북도 어느 골짜기에 살았던 이유로 예전부터도 통행금지라는 게 없어서 좋았다지만 그 대신 멀고 외진 산골살이를 하면서 물고기 맛을 별반 보지 못했다. 생선이란 것은 원래 먼 나라에서 잡아와 냉동으로만 팔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어쩌다가 구경이라도 해볼 양이면 겨우내 얼려서 파는 동태나 내륙까지 오는 동안 상하지 않게 하려고 소금에 팍팍 절인 갈치나 굴비, 꽁치와 고등어가 전부였다. 이런 궁한 유년을 보내서인지 아직도 남들이 싱싱하다며 반색을 하는 활어회라든지 해산물이라든지 하는 바닷가 비린내의 맛을 잘 모르거니와 그다지 반겨하지도 않는 촌스럽고 까칠한 입맛이 되었다. 몇 년 전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미리 정해놓은 여행의 테마가 바로 닥치고 제주맛보기였다. 천지연이나 성산일출봉이나 만장굴은 됐으니 몸국이나 고기국수 같은 제주의 맛집만을 싹싹 훑고 오자며 떠났다. 그때 정말 오랜만에 옛날에 먹던 갈치 반찬 생각이 나서 갈치조림과 구이 두 가지가 통째로 올라오는 맛집을 가 본 적이 있었는데 상차림은 매우 괜찮았지만 뭐랄까, 이상하게 한 가지만 있을 때와는 그 맛이 사뭇 달랐다. 


어머니는 귀한 생선 갈치를 상에 올릴 때마다 다소 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할머니와 아버지를 지나고 나면 어린 참새들에게 배급되는 양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결말은 그다지 해피엔딩이 아닌 표정으로 마무리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해주는 생선요리는 특히 갈치조림과 구이는 조리를 하는 레시피와 입안을 휘도는 풍미만 달랐지 한결같은 짠맛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농축된 짠맛으로 인해 콩알만 한 갈치 살점 몇이면 밥 한 그릇은 뚝딱 사라지게 했다. 무조건 짜기라도 해야 작은 물고기로도 여러 식구 공평하게 맛을 볼 수 있었으니 짠맛이야 말로 울 엄니 최적의 가성비였던 셈이다. 발라주신 갈치 살점에 우리들이 밥을 다 먹고 나면 어머니는 그제야 남은 잔가시에 붙어 있는 것들을 반찬삼아 밥을 드셨는데 식구들 편하라고 그랬는지 밥상도 부엌으로 연결된 쪽문 문간 가까이로 옮겨놓고 혼자서 묵묵히 한참을 드셨다. 어렴풋이 갈치조림일 때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도 같고 구이일 때는 그나마 덜 걸린 것도 같았지만 아무튼 한참을 그러셨다. 잔가시의 남아있는 살 바르기가 더뎌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때 어머니는 혼자만의 남은 밥상 앞에서 무슨 생각을 그리도 하셨을까. 알 것 같기도 하고 알고도 싶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던, 어머니 혼자 먹던 밥맛의 깊이와 맛을 나는 아직도 가늠할 수가 없다.   


짜도 맛있었던 유년의 갈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입안을 유영하며 덩치를 키웠다. 없는 살림에 큰맘 먹고 마련한 갈치 한두 마리는 조림이나 구이 중 하나로 통일해서 밥상에 올랐지만 조림이 올라오면 구이가 먹고 싶고, 구이가 올라오면 조림이 먹고 싶었던 애매한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요즘이야 다들 살이가 윤택해진 덕에 좋은 갈치를 마련하고 크기나 굵기도 예전에 먹던 갈치의 장오빠 격인 놈들이 태반이지만, 어머니의 시골집 갈치는 작고 얇은 것으로도 모자라 살이 흐트러져 형태를 짐작하기 어려운 조림이 되거나 바싹 타기 직전의 탄내 나는 구이였다. 그래서 늘 갈치는 아쉬운 비린내였다. 물론 조림과 구이를 한꺼번에 밥상에 올리는 호사는 지금도 누리지 못하고 산다. 갈치조림과 구이, 그 한 끗의 맛 차이, 갈대처럼 휘둘리는 변덕이 아련하다. 마치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물냉이냐 비냉이냐, 혹은 족발과 보쌈 사이에서 선택 장애를 일으키는 거룩하고 순결한 고뇌와도 같다. 갈치 반찬은 그렇게 빈 젓가락을 입에 넣고 그리운 비린내를 갈망하는 식탁 위의 신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의 갈치조림과 구이에 다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울 엄니 젊은 여자였을 적의 고된 삶이 한껏 버무려졌던 비장의 레시피, 짠맛 한 스푼이 아니냐.

               

슬슬 배는 고파오는데, 저녁은 되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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