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무대 위에 남아
여러분은 “연극이 끝나고 난 후”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 딱 어떤 지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한편이 따뜻해져요. “정적만 남은 느낌”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감정이라서 그런 걸까요? 몰입해서 일을 마친 뒤 조용히 여운이 가라앉는 순간이 떠오르면서 마치 그 끝맺음을 누군가 다정히 함께해 주는 것 같아 굉장한 위로가 돼요.
배우는 아니지만, 작가로서 전시회를 진행할 때 조명이 켜지고 꺼지는 순간을 극명하게 경험하게 돼요. 전시회를 일주일간 진행하려면 적어도 100일 가까운 준비가 필요하거든요.
어떤 주제로 관객들과 만날 지를 고르는 것부터, 가장 중요한 그림 작업, 그리고 그림 속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작가노트 작성, 전시가 다가올수록 관객들에게 소식을 하나하나 전하는 일까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전시 당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어요.
그렇게 저의 세 달은 일주일로 응축되어 보이죠. 하루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일주일이 지나고, 마지막 날. 철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유독 많은 감정이 겹쳐 올라와요. 특히 조급함도 늘 따라오는 것 같아요. 뭔가를 끝냈기에 금세 다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과 관객들과 빨리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전시회 하길 잘했다..!”예요. 제 그림을 바라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관객분들의 표정을 보면, 오프라인 활동을 쉽게 놓을 수 없어요. 확실히 작가는 관객들의 에너지를 먹고사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렇게 잠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다시 조명이 꺼진 일상이 눈앞에 펼쳐져요. 그리고 그 순간 스스로의 진가를 확인하게 돼요. 1년 중 단 일주일 조명을 켜기 위해 나머지 51주를 묵묵히 보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 경험을 하고 나서는 무대 뒤, 프로젝트 뒤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오늘 소개할 꽃은 바로 제가 이 감정을 처음 느꼈던 날에 작업했고 그렇게 탄생했어요.
시들고 난 후
After the Bloom Fades
이 작품은 활짝 피었을 때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묵직한 아름다움을 품은 시든 꽃을 표현해 봤어요. 색감 하나하나가 밝기만 하지 않은 건 조명이 꺼졌기 때문이에요.
저는 오히려 조명이 꺼져야 그 꽃의 진짜 색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배경의 밝음은 ‘꽃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그 위에 얹힌 차분한 색감들은 시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이 역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래서 저에게 시든 꽃과 조명이 꺼진 무대는, 공허함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한 고되지만 성숙해지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조명이 훤히 켜진 누군가를 바라보며 나만 조명이 꺼져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의 조명도 지금 잠깐 켜졌을 뿐, 분명히 그 이전에 어두운 시기를 지나왔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 내가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만 바라보면서 내 페이스대로 차근차근 나아가요.
이제 다음 페이지 준비해야죠 우리.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색감이 다시 시도해보려 해도 그때처럼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이에요.
여러분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 글이 잠깐이라도 여러분에게 따뜻한 조명이 되었길 바라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