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차고는 언제나처럼 복작거렸다. 역시 언제나처럼 경영관 소크라테스도 보였다.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출입문 기준, 대각선 방향, 가장 구석 4인 테이블, 벽을 등지는 의자. 차고 전체를 시야에 담을 수 있는 자리였다.
경영관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기숙사 룸메이트 희선으로부터였다. 경영학과라는 윤정의 자기소개에 예진은 ‘서완’을, 희선은 ‘경영관 소크라테스’를 언급했다. 서완은 예진과 함께 홍보처에서 근로하는 경영학과 학생인데, 그에 대한 예진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허풍과 오지랖이 심하다고. 다만 개강 전이기도 했고, 서완이 누군지도 모르는 터라 윤정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반면 희선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경영관 1층 휴게실에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그러면서 정확히 1시에 경영관 지하에서 학식을 먹는, 구석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중년 남성. 그를 경영관 소크라테스라 부른다고 했다. 윤정의 전적대 하늘대에도 하루 종일 학생회관 라운지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있었다. 도대체 저기 앉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밥 사 먹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그런 사람이 한국대에도 있다는 사실이 웃겼다.
윤정은 개강 첫날에 바로 경영관 소크라테스를 발견했다. 예진의 천적 ‘서완’은 아직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경영관 소크라테스’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윤정의 시선에 담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저만치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경영관 소크라테스가 보였다. 피식 웃음이 터졌다. 차고 문을 열려는 찰나였다.
"저기, 윤정 님?"
누군가 윤정을 불렀다. 경영관에서 윤정의 이름을 알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윤정은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희였다. 조금 전 강의실을 나갈 때처럼 미소도 짓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윤정이 어색하게 인사했다.
"차고 들어가려는 거예요?"
"네, 공강이라서."
"저돈데!"
세희가 손에 있는 샌드위치를 들어 보였다. 뭐지? 자랑하는 건가? 맛있어 보이긴 하네. 약간은 당황한 윤정이 적절한 대답을 찾는 사이 세희가 윤정을 앞장 지르고 차고 문을 열었다. 윤정은 홀린 듯 세희를 따라 들어갔다. 누군가와 같이 이곳에 들어오기는 처음이었다. 세희는 입구에서 멀지 않은 테이블에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윤정은 그런 세희에게 꾸벅 인사하고 몇 걸음을 더 떼었다. 그러자 세희가 다급하게 윤정을 불러 세웠다.
"어디 가세요?”
“네?”
"샌드위치, 두 개 들었는데?"
윤정은 그제야 조금 전 상황이 이해됐다. 같이 먹자는 뜻이었구나. 하긴, 샌드위치 자랑은 뜬금없긴 하지. 윤정은 세희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면서, 그녀의 친화력은 '좋은 조장'인 걸 넘어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정형화된 의사소통 절차 한두 개를 가뿐히 뛰어넘는데, 그게 무례하다기보단 자연스럽달까.
조금 전도 그랬다. 혹시 팀플 같이 할 수 있을까요, 윤정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세희는 활짝 웃으며 얼른 앉으세요,라는 대답으로 의자를 빼주었다. 네, 아니오 대답 단계를 뛰어넘고서. 지금도 비슷했다. 세희는 샌드위치를 나눠 먹는 게 어떠냐는 제안 단계를 가뿐히 패스하고 처음부터 나눠 먹는 단계부터 시작했다. 윤정은 자신에겐 없는 세희의 붙임성이 어색했지만 결코 싫지 않았다.
"저는 수업에 3학년이 있으니까 너무 반가운 거예요."
세희가 윤정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윤정은 어색하게 샌드위치를 받았다. 재수강을 하는 거냐는 세희의 질문에 윤정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3학년이 될 때까지 조직행동론 수업을 듣지 않은 거냐고 꼬리 질문이 이어졌다. 제가 편입생이라서 1학년 수업을 이제 들어요. 윤정이 말끝을 흐리며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방어 기제가 튀어나와 버렸다.
"아, 그래서 차고를 모르셨구나."
세희가 오물오물 샌드위치를 씹으며 답했다. 다음 문장은 무엇일까. 어느 대학에서 왔냐일까. 혹은 인정, 불인정 따위의 평가일까. 윤정의 입술이 바싹 말라갔다. 왜인지 세희라면 그럴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긴장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