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윤정은 경영관 휴게실, 그러니까 새로 알게 된 이름인 차고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개강 한 달 차, ‘아웃사이더’로 생활하는 건 꽤나 고달픈 일인 것 같다고. 처음부터 ‘아싸’가 되길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윤정은 이곳의 사람들과 잘 섞이고 싶었다. 개강총회에 올 거냐는 학회장의 전화를 받았을 때, 이런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날 밤 긴장되는 마음에 꽤나 오래 뒤척이다 잠들긴 했지만.
"어디서 왔는데요?"
편입생이라 자기소개를 하면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학교는 다닐만한지 등의 질문으로 무던히 대화를 이어가는 부류와, 출신이 어딘지 직접적으로 묻는 부류. 전자의 경우 혹여나 실수라도 할까 봐 조심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후자의 경우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자신의 궁금증부터 해소해야겠다는 의지 역시 눈에 보였다. 물론 '편입'이라는 제도 자체에는 전적 대학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기에 출신이 궁금할 수는 있다. 다만 윤정은 이 질문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하늘대에서 왔어요.'하고 담담히 말했지만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윤정에게도 나름대로 빅데이터가 쌓였는데,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레퍼토리가 대체로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례했다.
하늘대? 대놓고 표정을 찡그리며 그런 대학에서도 한국대에 올 수 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고, 성공했네, 따위의 대답으로 윤정이 보낸 이전의 시간을 '실패'로 규정짓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한국대는 객관적으로도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아야 올 수 있는 대학이 맞았고, 자신의 세계에서는 그걸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나눈다고 하더라도 윤정이 참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그 정도 반응은 오히려 점잖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윤정은 금방 알게 되었다.
"편입, 인정."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뭘 인정한다는 거지? 그러나 뒤이어지는 말을 듣고 윤정은 표정 관리를 하기 어려웠다. 맞은편 학생이 말했다. 어렸을 때는 공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정신 차린 거니까 인정해 줘야지. 그 말투는 마치 본인이 한 단계 더 높은 계급에 있지만 아량을 베풀어 기꺼이 이 테이블에 윤정을 끼워준다는 뉘앙스였다. 윤정은 아직도 그 학생의 이름을 모른다. 정확히는 잊어버렸다. 통성명 바로 다음 이어진 대화가 저것이었기 때문이다. 무례함의 강도가 어찌나 센지 이름은 머릿속에 남지도 않았다. 초면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윤정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의 정도'를 지금껏 과소평가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윤정도 이 대학에 거저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서류 전형과 필기시험을 치르고 면접시험까지 봐서 합격한 대학이었다. 그럼에도 통과해야 하는 또 다른 인정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것도 '학생'이라는 같은 신분의 누군가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게 다가왔다. 에브리타임에서는 종종 편입생을 동문으로 인정할 거냐 말 거냐를 두고 첨예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에브리타임은 윤정이 유일하게 학교 소식을 알게 되는 통로였기에 어플을 삭제할 수도 없었다. 익명 뒤에 숨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은 거침이 없었고, 날카로웠다. 윤정은 거기에 난무해 있는 비하와 혐오의 언어를 읽으며 조용히 상처받았다. 그 후로는 어떤 모임도 나가지 않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윤정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내내 '인정'이라 말하던 그 학생의 표정을 곱씹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윤정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학교를 다닌 것은. 그날 목격한 당당한 무례함과 우월감 앞에서 윤정은 입을 닫고 고개를 숙이게 됐다. 방어 기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윤정은 '출신 대학'을 묻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충족되는 호기심보다 치러야 하는 무례함이 더 큰, 민감한 질문이라고 여겨져서였다. 그래서 같은 편입생에게도 묻지 않았던 것이고. 대한민국에 만연해 있는 학벌주의와 대학서열 앞에서 그 질문의 의도는 뻔했기 때문이다.
어딜 가도 '급'이 나누어졌다. 윤정은 그 '급'이란 게 성적처럼 어느 정도 객관화 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형성되는 거라고 착각해 왔다. 한국대와 같은 명문대와 하늘대와 같은 수도권대의 급이 나뉘듯이. 어쩔 때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늘대 학생들이 먼저 자처해서 한계를 정하고 선을 긋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안 돼, 하는 식으로. 설령 외부에서 '너네 학교는 안 돼'하더라도 그걸 거부하고 극복하려는 게 옳은 방향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윤정도 별다른 반항 없이 편입으로 그 질서에 순응했다. 더 높은 '급'으로 오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또 급을 나누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국대 안에서는 신입생과 편입생으로 급을 나누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상경대 학생은 인문대 학생과 급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외고 출신들은 지방 인재 출신들과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사회에 나가도 다르지 않지 않을까. 대기업 다니면 중소기업을, 고시 출신이면 7급을, 7급 출신이면 9급을 무시하고. 정규직은 계약직을 무시하겠지. 외제차는 국산차를, 50평은 30평을 무시하지 않을까. 내 세대에서 끝날까? 그대로 대물림 되어서 아이들을 비교하고 있진 않을까?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가 입은 옷은 어디 브랜드네, 저 아이는 비싼 옷을 입네, 하고. 나중에는 반에서 몇 등하네, 어디 대학을 갔네, 그럼 그다음은 지금과 같겠지. 다시 도돌이표. 비교에는 끝이 없고 나쁜 것은 쉽게 번지니까.
윤정은 앞으로도 어떤 ‘급’ 안에 나를 던져둬야 한다는 사실이, 그 안에서 비교당하고 평가받길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내 귀에 욱여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피곤하다, 정말 피곤해. 그렇게 혼잣말을 되뇌며 차고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