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그럼, 다음 회의는 내일 3시에 차고에서 보는 걸로 할까요?”
“어떤 차고 말씀이세요?”
윤정의 질문에 다섯 명이 둘러앉은 책상 위로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곁눈질하는 조원들 사이에서, 윤정은 자기가 그렇게 못할 말을 했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윤정과, 윤정을 제외한 4명의 조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정은 밑도 끝도 없이 '차고에서 보자'는 말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고, 차고면 차고지 '어떤 차고'로 좁혀진다는 것이 다른 조원들에겐 이상하게 들렸다.
“아, 윤정 님 경영학과 아니세요?”
조장 세희가 물었다. 가시가 전혀 묻어있지 않은 둥근 말투였다. 다만 그 질문의 기저에는 윤정이 경영학과가 아닐 경우에만 이 이상한 분위기가 납득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해서 윤정은 되려 주눅이 들었다. 윤정은 경영학과였으니까.
“맞긴 한데...”
“1층 휴게실이요. 거기가 차고예요.”
“아,”
그제야 윤정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봐요, 조장 세희는 명랑하게 인사하며 강의실을 나갔다. 아무 일도 없는 듯 행동하는 세희 앞에서 윤정도 태연한 척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발끝에서부터 부끄러움이 올라와서 윤정은 계속 고개를 숙인 채로 복도를 걸어가야 했다. 이런 상황이면 윤정은 언제나 자격지심을 느꼈다.
5명씩 모여서 조 짜세요. 자율적으로.
난관은 이때부터였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발품을 팔아서 조를 구해야 했다. 그건 윤정에게만 국한된 난관이 아니었다. 윤정과 같은 편입생이든, 존재감 없는 '아웃사이더'든, 복수전공을 하는 타과생이든, 혼자 수업을 듣는 사람은 어느 강의에서나 존재하기에 윤정으로서도 한 번 민망하고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처럼, 아마도 모두에게 공유되는 경영관 문화에 대해 혼자만 무지하단 것을 들킬 때면 윤정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럴 때면 윤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어쩌면 이미 들통났을지도 모른다. 혹은 조원들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윤정 혼자 찔려 쩔쩔 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1층 휴게실이라면 윤정도 시간을 때우느라 하루에도 여러 번 들락거렸던 곳이다. 편입생이라 전공 수업 위주로 들어야 했기에 경영관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서였기도 하고, 무엇보다 경영관 안에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윤정이 혼자 시간을 때울 곳은 휴게실뿐이었기 때문이다. 윤정이 한국대에서 사귄 친구는 기숙사 룸메이트 예진과 희선이 전부였다. 다만 예진은 영문과였고 희선은 사회학과였기에, 따로 약속을 잡지 않는 한 경영관 안에서 둘을 마주칠 일은 없었다.
이런 순간이라면 앞으로도 자주 겪겠지. 윤정은 저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뱉었다. 그러면서 발은 1층 휴게실로 향하고 있었다. 다음 수업까지 붕 뜨는 1시간 공강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거기 이름이 차고였다니. 뜬금 없이 왜 차고야. 윤정은 그녀의 유일한 정보 제공처인 에브리타임에 들어가 ‘차고’를 검색했다. 누군가 윤정과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질문글 아래에는 스티브 잡스가 차고에서 애플 창업을 시작했다고, 한국대 경영학과 교육 철학이 혁신이라 거기서 아이디어를 따왔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제야 휴게실의 풍경이 이해됐다. 마감이 되어 있지 않은 천장, 제멋대로 페인트칠된 시멘트 벽, 조도가 낮은 조명까지. 왠지 공기가 나쁠 것 같은 인테리어였다. 정말로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어야 어울릴 법한 그 공간에는 테이블이 가득했다. 거기서 학생들은 조모임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소파 베드에 누워 잠을 자기도 했다. 예산 부족인 건가, 감각 부족인 건가, 윤정은 그곳에 갈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사실은 윤정의 무지였다. 참나, 누가 한국대 아니랄까 봐, 취지 한 번 거창하네. 머쓱한 마음에 혼잣말이 나왔다.
윤정은 이런 종류의, 한국대 특유의 자신감을 발견할 때면 이질감을 느꼈다. 형식적으로 동문이 되었더래도 실질적 동문은 되지 못했음을 확인 받는 것 같았다. 동시에 자신 안에 깃들어 있는 자격지심이 보였다. 그럴 때면 섬찟 놀라면서도 자신감을 잃은 스스로가 싫었다. 잘 할 수 있을까, 이제 시작인데. 윤정의 얼굴 위로 서글픔이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