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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_최재천, 팀최마존 저

by Wealthy 웰씨킴

평생 양심을 어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평생 염치없는 행동을 한 번도 보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은 변하고, 성장하고, 진화하기에 그 어느 것도 지금의 생각으로 전체를 단언할 수 없다고 본다.

때때로 양심을 저버릴 때도 있을 것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채무감에 지킬 수도 있을 것이고, 가능한 양심에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때때로 염치없는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고, 염치없는 행동 후에 후회와 자책을 할 수 있으며, 가능한 염치없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일까?

그것은 자신의 삶의 가치관가 신념에 따라 근거와 이유 그리고 행동이 달라질 수 있기에 되도록 나에게 당당하고 사회에 유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뿐이다.


오늘의 1일 1독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의 직업적 양심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담은 책, <양심>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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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재천

평생 인간과 자연을 관찰해 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0여 년간 중남미 열대를 누비며 동물의 생태를 탐구한 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89년 미국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2000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2019년 세계 동물행동학자 500여 명을 이끌고 총괄편집장으로서 《동물행동학 백과사전》을 편찬했다.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개설해 인간과 자연 생태계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 - 팀최마존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 채널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팀이다. 현재 '호모심비우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독자인 재미(재천이네 개미들)와 함께 살아가는 '재미들 세상'을 꿈꾼다. 이번 양심 편은 호모심비우스 프로젝트의 첫 작품으로, 학교 밖 학교를 통해 방송을 넘어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양심(어질 良, 마음 心)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을 일컫는다.

양심이 의식 혹은 감정이라면 염치(청렴할 廉, 부끄러울 恥)는 양심의 표상이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혹은 “염치도 없는 놈”이라는 표현을 보면 양심과 염치는 거의 동의어처럼 쓰는 것 같지만, 나는 양심은 심성을 가리키고 염치는 행위를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신경철학자 퍼트리샤 처칠랜드(Patricia Churchiland)는 그의 저서 《양심: 도덕적 직관의 기원》에서 양심은 신이 우리 안에 심어놓은 신학적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신경회로망에 뿌리를 둔 뇌의 구성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양심은 절대 확실한 게 아니며, 뇌가 성장함에 따라 함께 발달하고 인정과 불인정에 민감하다.

따라서 “나쁜 습관, 나쁜 친구, 나르시시즘의 시대정신에 의해 뒤틀릴 수 있다.”

<양심> 중에서


<인사이트>

양심의 기준치는 누가 정할 수 있을까?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양심을 지키려 매 순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그 기준에 만족하기 위해 더 높은

양심적 행동을 하려 노력할 것이고,

상황에 따라 양심을 내려놓는 사람들은

그 기준점이 점점 낮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며,

어떤 생각들을 하고, 어떤 행동들을 하느냐.

그것의 반복적 결과에 따라

자신의 양심 기준이 정립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양심'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근본적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이라는 것은 이후에 더 훌륭한 연구들이 꽃피울 수 있도록 기초를 놓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 그냥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런 과정 없이 자꾸 꽃만 보고 싶어 해요. 이제는 우리가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끌고 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기반이 탄탄해야 리더가 되는 건데, 여전히 똑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건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한국의 연구 성공률은 98%입니다. 실패하는 적이 거의 없어요. 연구 성공률이 최고의 나라라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연구를 하기 때문에 실패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해놓은 연구에 이어 같은 학술지에 발표하고 숫자만 채우면 됩니다. 이러니 노벨상을 받을 리가 없습니다.

최초의 연구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연구를 하겠다고 하면 실패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연구비를 받지 못합니다.

<양심> 중에서


<인사이트>

비인기, 비관심 분야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은 익히 들어왔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지원을 받기 위해

연구내용이나 문서를 조작하며 양심을

뒤로하는 사례들도 뉴스에서 종종 보도가 됐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타국의 선진 기술과 지식을

카피하며 성장해 온 한국이다.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 안정적인 경제와

삶의 질 향상으로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지원할 분야는 방대한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이 딜레마를 지혜롭게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지금으로서는 진흙 속에서 진주가 나오길,

어려운 환경 속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먼저

만들어내야 가능할 것만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 같다.





《최재천의 생태 경영》에서 나는 “서로 상대를 적당히 두려워하는 상태(상호허겁相互虛怯)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평화를 유지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은 무슨 까닭인지 자꾸만 이러한 힘의 균형을 깨고 홀로 거머쥐려는 속내를 내보인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관찰해 온 자연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자연에서 제일 먼저 배울 게 있다면 이 약간의 비겁함이다”라고 적었다.


진화는 철저하게 상대적인 현상입니다.

혼자서 “내가 진화할 거야”하며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함께 진화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자꾸 세상을 내 관점뿐 아니라 남의 관점에서 보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인사이트>

나는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성별을 떠나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입장이다.


여성이 우위에 있을 필요도 없고,

남성이 우위에 있을 필요도 없이

상호 간의 이해를 기반한 협의점을 찾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어떤 때는 네가 어떤 때는 내가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됨으로써

남계혈통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시선과 문화, 법적 규제를 바꿈으로써

여성의 인권이 신장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오히려 남성의 인권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과연 이 난제는 균형을 지키며 풀어낼 수 있을까?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남녀의 평등성을

완전하게 5:5의 선으로 지킬 수는 없으리라 본다.

누군가는 우위에 서고 싶어 할 것이고,

누군가는 속박에 또다시 불만을 제기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서로의 존재와 역할을 존중하며

이해와 수용의 자세를 지켜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태학자로서 외길을 걸어온 최재천 교수의

개인의 삶과 일, 그리고 사회에서의 역할에서

양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소신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양심>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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