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할 권리
나는 부모형 분리불안을 앓고 있다.
아내 : 나 내일 퇴근이 늦을 것 같은데
나 : 나도 내일 늦을 것 같은데, 그럼 아버지께 부탁드려 보자!
아내 : 태권도에 1시간만 더 있으면 되는데 아버지께 부탁드리는 건 민폐가 아닐까?
나 : 아이들이 그 시간을 힘들어할 거야.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내 육아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다. 늦게 퇴근하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이들은 내가 늦으면 태권도장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늦는 동안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 노출될지 두렵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도 두렵다. 아내와 내가 동시에 출근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가끔씩 회사에서 일찍 귀가하거나 휴가를 내게 되어 집에서 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일부러 두세 시간 정도는 일찍 하원을 시킨다. 아이들 없이 혼자 쉬는 내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매 분 매 초를 꽃길 정도가 아니라 꽃 바다에 잠식되도록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