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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국 Nov 20. 2024

17.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아이

끈기와 회복 탄력성

노력과 회복 탄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두 발 자전거' 다. 두 발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에는 수없이 비틀거리고 넘어진다. 벽에 부딪히거나 원치 않는 곳에 박혀버리기 일쑤다. 지금 우리 첫째처럼.

아들 : 또 해볼래.
아빠 : 자꾸 넘어져서 속상하지 않아?
아들 : 괜찮아! 넘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어!
아빠 : 그래, 넘어지는 것도 부딪히는 것도 모두 당연히 겪어야 하는 거지. 자전거를 타다 보면 당연히 넘어질 수 있는 거야 맞아.
아들 : 할 수 있을 것 같아. 쉬워!

이 짧은 대화에서 나는 아들의 회복 탄력성을 느꼈다. 언젠가 시련이 닥치면 이렇게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복 탄력성이란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 오히려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아이를 키우고 싶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 나는 지식보다는 이러한 능력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회복 탄력성을 가진 아이는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실패에도 절망하지 않으니 행복하다. 끝까지 도전하여 성취하니 행복하다. 회복 탄력성은 세상을 스스로 살아나갈 때 필요한 중요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육아가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줄 수 있을까? 언제나 그랬듯 책에서 그 길을 찾았다.



지난 글에서 고통도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이러한 인생관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회복 탄력성’이다. 실패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고통도 인생의 일부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서는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를 강조한다. 인생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과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 그리고 운이라는 날줄이 합쳐서 직조된다고 하였다. 아이가 이러한 자세로 인생을 살아갔으면 한다. 어려움을 겪어도 ‘인생은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야.‘라는 자세로 현실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이러한 인생관을 가지게 되면 쉽게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와 절망에 큰 의미를 두어서 스스로를 아먹지는 않을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는 힘이다. '나는 할 수 있는 아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힘. 샤르트르는 인간은 본질이 없는 존재 라고 하였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유명한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이 말은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타인'이라고 하며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하였다. 우리 존재의 의미는 자유롭고 광활하다. 이를 타인이 지옥같이 제한한다는 의미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타인'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규정짓는 존재. 우리는 아이를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규정지었으면 좋겠다. 정주영의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에서는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스스로 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그 가치관에 신념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나는 '타인'으로써 우리 아이들이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규정하고 스스로 가치관을 정했으면 한다. 그렇게 생성된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아이를 실패에서 일어서게 한다.



위의 두 가지는 우리가 도와줄 순 있지만 아이 스스로 가져야 하는 인생관이다. 이제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사항에 더 치중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과정에 대한 칭찬이 중요하다.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칭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하는 조언다. 자주 듣다 보니 뻔한 말이 되어서 중요성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정을 칭찬하는 것은 회복 탄력성 형성에 필수적이다.


과정을 칭찬한다고 하면 칭찬을 적게 해야 한다고 오해를 한다.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이 할 기회가 생긴다.

딸 : 아빠 이거 어린이집에서 만들었어!
아빠 : 와! 대단한데 너무 재미있었겠다. 여기 이렇게 색칠한 거 정말 노력했겠는데? 이건 뭐야? 꼼꼼히 색칠했네~ 파란색 노란색 스스로 생각해서 고른 거야? 생각 정말 잘했는데?
딸 : 응! 이것도 볼래?

완성품을 만들 때까지 노력했던 과정을 칭찬하자는 것이다. 내가 만난 몇몇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정 전체를 부정해 버린다.


'나 잘 못했어. 마음에 안 들어.'


정말 가슴 아픈 말이 아닌가? 마음에 안들순 있어도 잘못한 건 아니다. 아이들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과정을 칭찬하면 '지금 2등이라도 재미있었어! 또 재미있게 해 보자!'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알렝드 보통은 '불안'에서 인간은 태어나서 존재 그 자체로 사랑을 받다가 점차 '성취'가 사랑의 근거가 된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이 무척 슬펐다. 우리 아이들 '성취' 결과가 아닌 과정과 노력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면 어떨까.



모든 것이 가족의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실패하더라도 날 사랑해 주는 가족. 내가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 그런 가족이 있다면 아이는 쓰러지지 않는다. 나를 언제나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 있으니까. 실패를 거듭하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아이의 회복 탄력성은 거기서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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