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건설업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각색한 에세이입니다.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는 청렴하게 일하고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대한민국의 공공 공사 입찰 과정에서 흔히 듣는 숫자, 바로 88%. 공사업자들이 제출하는 입찰가가 실제 예상 공사비의 88% 정도로 맞춰질 때 낙찰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공정하고 경쟁력 있는 시스템으로 보인다. 마치 최적의 가격에 맞춰 공사비를 절감하고, 예산을 아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88%라는 숫자는 그저 표면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공사감독관과 시공업자 사이의 교묘한 거래가 숨어 있다.
공사감독관은 프로젝트 초기부터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입찰에 참여할 시공사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들과의 긴밀한 관계는 입찰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입찰이 시작되면 수많은 건설사들이 참여하고 경쟁하지만, 사실상 최종 낙찰자는 이미 정해진 상태다. 공사감독관과의 오랜 관계를 유지해 온 시공사에게 낙찰의 기회가 돌아간다. 이때, 낙찰율 88%는 그들 사이의 합의와 전략의 일부에 불과하다.
88%로 낙찰된 시공사는 프로젝트 초반에는 공사비 절감을 위해 일정 금액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사감독관과의 협력 속에서 그들은 낙찰 직후부터 부족한 금액을 보상받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실제로는 절감된 공사비 없이도, 감독관의 협조 덕분에 ‘약속된 보상’을 받게 된다. 이 12%의 부족분이 공사 후반부에 보상되는 방식은 더욱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공사감독관은 ‘승인자’ 역할을 한다. 시공사가 입찰에서 낮은 가격을 제시했으니, 이후에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증액 신청을 한다. 공사감독관은 이러한 증액 요청을 검토하고, 서류상으로는 정당한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증가로 보고한다. 이 증액은 흙의 반출, 자재 운반, 추가 작업 등으로 명시되며, 표면적으로는 공사에 필수적인 절차로 보이게 된다. 공사감독관은 이 증액 요청을 승인하면서 시공사에게 ‘보상’을 보장해 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서류상의 일일 뿐이다. 공사감독관과 시공업자 간의 교묘한 합의는 법의 눈을 피하기에 충분히 정교하다. 예를 들어, 흙의 운반과 같은 작업은 그 양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공사감독관은 서류와 사진을 통해 작업이 완료되었다고 보고하지만, 실제로는 흙이 현장에서 반출되지 않거나, 처음부터 운반이 필요 없는 상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공사비를 부풀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며, 실제로는 공사비 절감의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시공사는 이러한 공사감독관의 묵인 하에, 공사 진행 도중 계속해서 비용 증액을 요청하고, 그 과정에서 감독관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관계에 있다. 시공업자는 공사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감독관은 그 대가로 일정 금액을 챙기는 방식이다. 그들이 지켜야 할 공정성과 투명성은 서로의 ‘합의’ 속에서 쉽게 무너진다.
시공업자들은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하다. 그들은 공사감독관과의 관계를 통해 낙찰 후 공사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입찰 과정은 형식적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상 내부적으로는 철저히 ‘조율’된 상태다. 88%라는 숫자는 그저 그들의 협력을 유지하기 위한 포장일 뿐, 그 속에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공사비가 부풀려지고, 그 부담이 국민의 세금으로 전가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시공업자들은 낙찰을 받는 순간부터 공사비 증액을 위해 어떻게 감독관을 설득할지 전략을 세우고, 감독관은 시공업자에게 공사 진행의 명목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서, 그들은 서로를 위한 ‘협력자’에서 공사비 부풀리기의 ‘공범’으로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