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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호의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폭력이 될 수 있다.

by 유노미 Jan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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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다른 경우는 상당히 많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게 호의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의 경우는 독립적이고 주도적이고 내가 스스로 무언가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연애할 때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 커플데이트를 할 때 조금 충격이었던 장면이 있다.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장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일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에 내가 직접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그렇게 먹여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던 적이 있다. 오히려 먹여주는 게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주는 걸 거절하면 상대방이 무안할 수 있으니 어쨌든 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그게 먹고 싶지 않더라도 말이다. 뭐. 상대가 먹여주는 걸 좋아하는 경우에는 나도 그 행위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지 나는 내가 먹여주는 걸 받아먹는 게 싫을 뿐. 


그렇다. 상대에게 호의를 가지고 한 행동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계속해서 하면 그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로 물리력을 행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듯이 폭력의 형태도 다양한 것이다. 상대방은 그걸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폭력적 호의를 계속해서 베푼다.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남사친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나에게 내가 원하지 않는 칭찬을 했다. 예를 들면 "00, 너는 참 날씬하다." "오늘 입은 옷이 되게 멋지다" "가방 예쁘다" 이런 식. 옷이나 가방은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는데, 몸매나 체형, 얼굴등에 대해 얘기할 때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뭔가 품평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분명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좋은 이야기를 꼭 외적인 부분으로 해야 했을까? 심지어 그 친구의 어머니는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일한 꽤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고 친구 또한 인권에 대한 다양한 공부를 했던 친구였다. 그래서 아마 그 친구에게 더 실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그냥 칭찬인데 그게 왜 싫으냐며 되려 물었다. 칭찬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싫을 수 있다고 얘기를 했지만 그 친구는 납득을 하지 못했고, 나름 생각하는 것이 잘 통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그 이후로 만나지 않았다. 아! 그 친구가 연락을 차단했다.  


사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상대방이 알기는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누군가 나의 기분이나 상태를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가 얘기하기 전까지는 그런 것들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짐작만 할 뿐이다. 


귤을 먹을 때 껍질을 까서 조각을 내어 접시에 놓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넣어주는 건 나는 싫다.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이런 사소한 것에까지 자유를 갈망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자유의사가 아닌 무언가를 강요받는 것을 어릴 때부터 싫어했던 것 같다. 


결혼을 한 지금 나는 레오에게 항시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레오는 항상 그 반대로 행동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얘기하면 항상 또 그 반대로 하고 있는 레오를 본다. 


예를 들어, 내 차 내부에서 무언가 덜덜 거리는 소리가 나서 이야기를 했더니 블랙박스 선이 고정이 안되어서 떨리는 것 같다며 그것을 고정해 주겠다고 했다. 고정 작업을 한 뒤 운전을 하니 소리는 조금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소리가 났다. 나는 원인을 알았고 심각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운전할 때 그리 거슬리지 않았기에 더 이상 고정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외출을 해야 해서 건조기 작동이 완료되면 세탁물 정리를 부탁하고 외출을 했다. 


볼일을 보고 돌아오니 레오는 나를 향해 뿌듯하게 바라보며 자동차에서 이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자기가 오후시간에 선 고정을 다시 해 두었다며. 나는 괜찮다고 한 일을 굳이 나서서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거기에 쓴 것이었다. 건조기에 세탁물은 당연히 그대로 있었다. 


하지 말라는 일은 하고, 하라는 일은 하지 않은 레오. 레오에게도 자유가 있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게 정말 나를 위한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건 레오 자신을 위한 일인 것이다. 어찌 보면 모든 폭력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후 운전을 했는데 차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났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의사도 함께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기준에 따라 상대방이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제발 모든 사람이 이 간단한 이치를 이해하고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상대는 상대이고 나는 나이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도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아주 가까운 사이일수록 좀 더 그 선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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