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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일상에 잠시 멈춤을 갖는 것

by 유노미 Jan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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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전날 찬바람 맞으며 러닝을 해서일까? 전날 저녁부터 목이 조금 아프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목감기가 꽉 들어있었다. 전날 레오는 마침 일하다가 발을 삐어서 정형외과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어제 병원을 찾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오후시간이라 엑스레이를 찍고 상담을 받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 것.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 날, 나와 레오는 나란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오른발은 멀쩡했던 터라 레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병원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머리가 아픈 나보다는 정신은 멀쩡한 레오가 운전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나는 내과로 레오는 정형외과로 향했다. 오전 이른 시간이었지만 내과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접수를 하고 친절한 남자 간호사가 "1시간 20분 정도 대기해 주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정말 사람이 많았다. 정말 1시간 20분을 기다릴까 싶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는데, 정말 1시간 20분을 꼬박 기다려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친절했다. 증상을 묻고 아픈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독감은 아니라며, 나흘 치 약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이때는 콧물이 나지 않았는데, 코약도 함께 처방할지 물어보시길래 따로 처방해 주시면 콧물이 나오게 되면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 연말이고 하니 약을 좀 더 길게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7일 치 약을 처방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근육통이 있을 수 있어서 엉덩이 주사를 맞겠냐고 물었다. 나는 수액을 맞는 편이 나을 듯하여 수액을 맞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1시간가량 비타민과 면역력 등 감기를 낫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액을 처방받고 진료실을 나왔다. 


대기가 길었지만 주사실에는 다행히 자리가 남아 있어서 바로 수액을 맞을 수 있었다. "따끔해요"라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링거 바늘이 오른쪽 팔의 중간 즈음 혈관에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살짝 따끔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주사 바늘을 통해 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늘냄새가 좀씩 나는 걸 보니 마늘주사인가 보군 생각하며 전기장판이 틀어진 베드 위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감기에 걸리면 참지 않고 무조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서 약 처방을 받고 수액을 맞는다. 아픈 상태로는 정신이 몽롱하여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감기몸살로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 권유로 수액을 맞았는데, 그렇게 수액을 맞으니 정신이 좀 말짱해지고 조금 살만해졌던 것. 그때부터 아프면 수액을 맞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수액을 맞는 동안 레오는 정형외과 진료를 마치고 볼일을 보고 있었다. 왼쪽 발의 인대와 뼈가 살짝 찢어졌다며 7주 정도 반깁스 한 상태에서 최대한 움직이지 말라는 처방을 받았다. 물리치료를 20분 정도 받고 내가 수액을 맞는 1시간 동안 볼일을 보고 내가 있는 내과로 돌아왔다. 먼저 들어가라고 했지만, 마침 일을 비슷하게 마쳐서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 


처방약을 제조받아 들고, 차에 탄 우리는 집에 돌아와 약을 먹기 위해 편도(편의점 도시락)를 꾸역꾸역 먹었다.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하지만 뭔가 음식을 준비할 여력이 안되기도 했고, 빨리 약을 먹고 싶었다. 그렇게 편도를 먹고 약을 먹고 나니 조금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수액을 맞은 효과이기도 했다. 레오는 반깁스가 불편한지 소파에 앉아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편안한 자세를 찾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저 깁스를 해야 한다니, 회사에 병가를 내라고 했지만 움직이는데 무리가 없다며 출근하겠다고 했다. 그러하게 우리의 2024년 12월 31일 마지막날을 보냈다. 


1월 1일 우리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뒷산에 오르려 했지만 둘 다 그럴 상태가 아니었기에 집에서 새해를 맞았다. 삼 시 세끼를 꼬박 잘 챙겨 먹고 그에 맞춰 약도 꼬박 챙겨 먹기를 이틀 삼일이 되니 나의 감기는 낫는 기미가 보였다. 나흘째 된 날에는 부었던 목이 언제 그랬냐는 듯 침을 삼킬 때 아프지 않았다. 4일 치 약을 지어주는 의사 선생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군. 생각하며 콧물약과 함께 약을 먹었다. 


새해에는 일출 계획도 있었지만 2025년을 맞이하며 20.25km를 달려봐야지 하는 계획이 있었지만, 이 상태로는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혹시나 하여 인터넷 검색도 해 보았다. '감기 걸렸을 때 러닝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으로 검색을 하니 여러 답변들이 줄지어 나왔다. 결론은 달리지 말라는 것. 그렇다. 달리지 않는 게 답인 걸 알면서도 검색을 해 본 것이다. 혹시나 달려도 된다는 글이 있는지 찾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러닝을 못한 지 꼬박 6일째 되는 일요일이다. 지난 금요일에는 골프와 수영도 건너뛰었다. 운동 없이 가벼운 스트레칭으로만 2025년 새해의 5일을 보냈다. 


무리한 연습보다는 부족한 연습이 낫듯이, 항상 시작하는 일상에 잠시 멈춤의 일상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비움이 있어야 채울 수 있듯이 쉼의 일상이 시작의 일상을 갖게 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쉬는 동안에는 우연히 '달리기의 과학'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하여 읽어보고 있다. 사람의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표현하여 설명과 함께 논리적으로 설명한 책인데, 이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궁금했던 부분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 두니 재밌어서 잘 읽고 있다. 러닝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러닝을 잘하기 위한 나름의 준비 시간인 것이다. 


이렇게 쉼표를 찍으며 새해를 시작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항상 새해에는 뭔가로 분주하고 활기차고 기대에 부풀었던 것 같은데, 이런 차분한 시작도 은근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연재를 끝으로 '모든 시작의 일상' 브런치북 연재는 마치려 한다. 약속한 요일에 글을 올리지 못하거나 다른 날짜에 글을 올리는 등 첫 브런치북을 시작해 마치게 되었는데, 다음에는 좀 더 약속을 잘 지키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인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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