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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영준SimonJ Nov 08. 2024

2부. 잔인한 겨울

2. 역경

가을바람은 유난히 쓸쓸하게 백군의 가슴을 쓸었다파혼에 따른 주변의 시선보다 덕이를 마음에서 지워야 하는 고통이 더 컸다백군의 집안과 부모님은 실연은 다른 사랑으로 채우면 된다고 서둘러 혼처를 알아보고 있었다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퇴근해서 오는 아들에게 축 처진 어깨 좀 펴라고 하면서 여러 처자들의 사진들을 내밀기 시작했다백군의 어머니는 사진을 내밀며 이 아가씨 어떠니대학도 나오고 집안도 좋은데라며 백군의 눈치를 살폈다백군은 어머니의 이런 모습이 싫었다회사에서는 백군을 미국 지사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백군의 결혼 등 상황을 보고 있었고지금 상황은 더욱 발령내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백군은 작심한 듯 미국지사 발령을 내달라고 자원했다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가겠다고 했고회사는 반기는 분위기였다정식 발령이 난 날 저녁에도 백군의 어머니는 여러 혼처를 가지고 아들에게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백군은 식사를 물리고 어머니저 미국지사 발령 났어요봄에 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지금은 미국 지사 나갈 준비를 해야 해서 당장 결혼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백군의 어머니는 그럼 서둘러 결혼해서 같이 가면 되지 그 먼 타국에서 어찌 혼자 지낼 생각을 하니?”라며 마음을 졸였다백군은 어떻게 배경과 사진만 보고 결혼을 할 수 있으며 그런 결혼을 해서미국까지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건 평생 같이할 사람을 구하는 일 같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백군의 어머니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덕이는 준기와의 결혼 준비를 하며오빠에게 허락받고 싶었다덕이 오빠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준기는 늘 덕이 오빠 앞에서 주눅 들어 있었다준기는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어서 취직은 됐지만학력 등 이력이 좋지 않아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성실하고 회사일을 척척 잘 해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있지만회사 시스템 상 월급을 넉넉히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학 나온 사람들이 준기보다 입사가 늦은 상황에도 2만 5천 원 정도의 월급을 받을 때 준기는 1만 2천 원 정도 받고 있었다월급을 받을 때면 늘 못 배운 것에 대한 화가 치밀었다그렇지만덕이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다당장 필요한 것은 두 사람이 신혼살림을 차릴 곳을 마련하는 것인데 세 들어 살만한 전세금도 없을뿐더러월세도 만만치 않았고덕이가 오빠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므로 덕이도 친정으로부터 받아낼 것이 없었다덕이도 자신이 아무 일도 못하고 모아둔 자기만의 자산도 없는 것에 화가 났다결혼을 미룰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이 시간을 놓치면 영영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덕이 어머니는 아끼던 둘째 딸이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두 사람은 겨울 동안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두 사람이 새로 시작할 집을 알아보고 다녔는데좀처럼 주변에서는 찾아지지 않았다통장 일을 하는 오빠의 으름장이 동네 사람들을 돌아서게 했다덕이의 오빠는 덕이가 준기를 포기하길 바랐던 것이다집에서는 덕이오빠가 어머니에게 한 푼도 도와주지 말라고 큰 소리로 말하기 일쑤였다덕이는 그럴수록 오기가 났다. ‘꼭 결혼해서 잘 살고 말 거야’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동장군은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작해야 하는 두 사람은 그렇게 춥지만은 않았다   


백군은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고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뭔가에 미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잠시 머리를 식히러 밖으로 나선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덕이의 집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돌아가고 싶었지만몸은 계속 덕이의 집 쪽으로 가고 있었다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서려는 순간 준기와 덕이가 하얀 입김을 뿜어 대며 뭔가 열심히 얘기하며 밝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그들이 눈치채기 전 고개를 돌렸다서둘러 자리를 피했고오갈 데 없는 마음은 제 멋대로 쿵쾅거렸다  

   

겨울은 그렇게 아무것도 매듭지어주지 않은 채 지나갔다준기와 덕이는 경기도 시흥에 있는 목장집 움막에 세 들기로 했다초원 한가운데 목초 더미를 쌓아두며 방을 만들어 가끔 주인이 이용하던 곳이다말도 안 되는 상황 같지만준기와 덕이 에겐 두 사람 만의 보금자리로 좋다고 여겨졌다값도 많이 치르지 않아도 되고주인집과 떨어져 있어서 간섭도 없을 것 같았다준기는 운전을 하기 때문에 회사 차로 출퇴근이 가능했다보잘것없는 헛간이었지만 두 사람이 꿈을 키우기엔 안성맞춤 같아 보였다준기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덕이가 고마웠고 그리고 미안했다. 4월 준기와 덕이는 양가 집안의 일부만 모인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엄청난 대사를 치르고 하는 결혼치 곤 너무나 초라했다이 결혼을 먼발치에서 바라본 사람이 둘이 있었다백군과 덕이 오빠였다백군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바로 공항으로 향했고덕이 오빠는 끝까지 고집 피운 덕이가 미웠고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도 미웠다백군은 덕이의 결혼을 보고 가려고 출국 날짜를 미뤄 왔었다고향을 박차고 오른 비행기는 백군의 무거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힘차게 날아올랐다     

준기와 덕이는 언젠가 백군과 파혼을 유도하기 위해 떠났던 밀월여행 때 갔었던 수안보로 신혼여행을 갔다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맞설 용기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제대로 된 초야를 치르고 초원 한가운데 서있는 헛간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이가 들어섰고덕이는 뱃속의 아기와 하루 종일 대화를 했다큰 선물을 받은 두 사람은 너무나 기뻤다아이를 낳기 전에 좀 더 좋은 곳으로 거처를 옮길 생각에 준기는 마음이 바빴다처음 생각과는 달리 초원의 생활은 덕이를 힘들게 했다준기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덕이의 임신 소식을 들은 덕이 엄마가 먼 길을 걸어서 가끔 덕이에게 들러 주고주인집에서 가끔 사람이 오는 것이 전부였다덕이 엄마는 이렇게 사는 덕이를 보는 게 마음 아팠다. “이것아 고작 이렇게 살려고 그 난리를 폈어?”라고 핀잔을 주다가도 올 때마다 조금씩 살림에 보탤 돈을 가져다주기도 했다덕이는 엄마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엄마잘 살게 걱정 마?”라고 말하며 덕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늘게 웃곤 했다준기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덕이는 초원의 밤이 무서웠다그렇지만덕이는 푸른 초원과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을 보며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영원까지 잘 키워가리라 다짐했다 만삭이 되어 갈수록 병원을 자주 갈 수 없었던  덕이는 어지럼 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리고 계절은 또 한 번의 겨울로 가고 있었다.  


-덕이의 사랑 -

    

난 푸른 초원에

그 사람과 있어요.

하늘과 맞닿는 곳까지

우리 둘만 함께할 수 있어요. 

    

난 부족해요.

그 사람도 부족하죠.

하늘만 알아요.

우리 둘이 함께하면 부족하지 않은 것을.     


초원의 빛이

사라지기 전에

우린 커다란 집을 지을 겁니다.

우리 사랑을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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