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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라한 저는 수련하여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by 소흐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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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이유

밴드 2년, (3년?) 마음만 먹었다면 신스 연구쯤은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사고도 마음도 간장종지만 해서, 비처럼 쏟아지는 미션들을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비 쏟아지듯, 이라고 해야 할까? 돌이 쏟아지듯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땐 그저 ‘할 일이 많아서 뭔가를 더 공부하는 게 힘들다’ 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 무능함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다. 그게 진짜 이유였다.


그때의 나는 참 우습기도 하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내가 예전에…’라는 말보다 ‘과거의 나는’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그냥 다른 사람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구에게 1:1로 배울 배짱도 없었다. 왜냐면 ‘배운다’는 것 자체가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이었으니까.

학교를 빼고는 뭐든 독학으로 해온 것도 같은 이유였다.


미디

신스를 제대로 다루려면 컴퓨터 음악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드 마지막 즈음엔 미디컨트롤러로 샘플을 다뤘는데, 그 과정에서 접한 생소한 용어들이, 신시사이저를 만질 때 보았던 공포의 용어들과 같았다.


‘개러지밴드’는 스물 중반부터 만지작거렸다.

미디(MIDI)라는 개념을 이해한 게 그때였다.

덕분에 미디에서 신스로 개념을 연결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때 큰맘 먹고 개러지밴드의 확장 버전인, ‘로직’을 질렀다.

공연 때 쓸 모바일이 필요해 맥북도 함께 샀다.

애플이 만든 로직은 가상악기 퀄리티가 좋기로 유명했다.

오래 고민했던, 큐베이스(다른 미디프로그램)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첫 곡은 짧은 피아노 연주곡. 솔직히 말해서, 정말 형편없는 곡이다.

가끔 그 곡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비교군으로.




두 번째 선생님

영어 선생님은 내게 단순한 영어 선생님이 아니었다.

명상의 길로 안내해 준 사람이었고, 정말 재밌게 사는 인생의 표본이 되어주었다.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어쩜 저렇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람들 앞에 서 있을 수 있을까?’ (욕 아님)


무언가를 배우는 데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 받은 영향으로 나도, 배움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마침 한창 영어 공부에 몰두하던 때라, 영어 강의를 제공하던 플랫폼에서 로직 강의를 찾았다.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강사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잠깐, 예전 대화를 찾아봤는데. 내 말투 왜 저러냐. 오글거려서 미치겠다...)


대충 정리하면,

“이론 전무, 믹싱 이해도 제로, 로직은 미디만 찍어본 적 있습니다.”

선생님은 돌직구를 던졌다.

“강의는 믹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요. 완전 기초만 다루니까, 개인 레슨 받아보는 게 어때요?”


어? 그렇게도 되는 건가?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기분 좋게 설렜다.

관심 있던 사람에게 고백받은 것처럼, 온갖 거절할 이유를 찾을 필요 없이 ‘네’ 한마디면 충분했던 순간.




기초 강의를 모두 보고, 연습도 해봤다.

그리고 서울로 레슨을 다니기로 했다. 꽤 큰 결심이 필요했다.

왕복 네 시간을 길에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돈을 쏟아붓는 게 낫지. 돈은 다시 벌 수 있어도 시간은 벌 수 없으니까.(물론 돈 버는데 시간도 필요하다만…)


넷플릭스를 스크롤하다가 무심코 틀어버리는 킬링타임 영화가 아니라, 도저히 손은 안 가지만, 꼭 봐야만 하는 명작 같은 것들이 있다.

주변을 정리하고, 호흡도 가다듬고, 매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볼 수 있는 그런 영화.


노래도 그런 노래들이 있다.


매주 화요일, 오후 12시 50분부터 두 시간.

그리고 다시 두 시간의 복귀.

왕복 네 시간 동안, 미루고 미뤄뒀던 그 명곡들을 아끼지 않고 들었다.


지각

첫날, 지각을 했다.

전날 네비는, 한 시간 반이 걸린다고 예상했지만, 막상 출발해 보니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12시 50분에 출발했을 때, 빠르면 한 시간 반 만에도 도착하는데, 고작 10분 늦은 한 시에 출발하면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서울의 교통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어딘가는 블랙홀, 어딘가는 웜홀이다.


나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 종종 지각을 한다.

나 같은 인간에게 서울 운전은, 눈을 감고 우주를 떠도는 것과 같다.


첫날 30분 늦고 나서, 다음 레슨 때는 지각할까 무서워, 아예 한 시간 더 일찍 출발했다.

그랬더니 레슨시간인 3시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한 시간 반을 카페에서 멀뚱히 기다렸다.


첫 수업

코로나로 잃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다.

어떤 상황이든 결국 균형이 맞춰진다는 말, 위기를 기회 삼는다는 말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선생님도 작업실을 얼마 전에 정리했다고 했다.

펜데믹으로 꽤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나도 일이 줄고, 심심한 시간이 많아졌다.

덕분에 큰 고민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선생님은 소년 같았다.

영상으로 볼 때는 좀 세 보였는데, 막상 만나보니 귀염귀염, 진짜 우리 막냇동생 같은 느낌.

비트메이커, 래퍼, 프로듀서로, 어린 나이부터 음악을 시작했고, 음악 인생의 반절은 이미 프로로 살아온 사람.

아, 인플루언서도 추가해야겠다.

언젠가 협찬?이 들어왔다며 수입 맥주를 바리바리 싸준 적이 있다.

(인스타 인플루언서에게 오는 광고 같았는데, 그때 처음 소셜미디어의 수익 구조를 알았다.)




선생님이 내게 작업한 곡이 있냐고 물었다.

“있다 한들 내가 보여주겠냐”는 말은 삼키고, 그냥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다 온라인 강의에서 쌤에게 배운 스킬로 만든 곡을 꺼냈다.

가만히 듣던 선생님이 말했다.

“이 정도면 앨범으로 내도 되겠어요.”

순간, 이게 비즈니스인가 싶었다.

그래서 말했다.

“선생님, 이거 다 샘플이에요. 애플 룹스예요.”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자연스러워요. 비어있는 부분 없이 잘 짜여졌어요.”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하지만 믿지는 않았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대체로 친절하다는 걸 믿는다.

처음엔 쉽게 칭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나중에 여러 번 작업물을 보여주면서 알게 됐다.

그는 보기보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첫날은 선생님 자신의 작업물을 보여주며 레슨을 했다.


일러스트 툴을 다루는 나는 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작업물 날 것을 보여주는 게 얼마나 큰 쪽팔림을 무릅쓴 것인지.


레슨이 끝나갈 무렵에, 쌤이 말했다.

“다음부터는 소흐님만의 곡을 만들어오세요.”

원래 진도가 이렇게 빠르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사람마다 다르죠.”




건반계의 페라리

밴드 소유였던 장난감 신시사이저를 반납했다.

내게 남은 건, 그보다 더 장난감 같고, USB 접합부도 헐거워 제대로 인식도 안 되는 마스터 키보드.

그리고 몇 달 뒤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스님에게 갈 디지털 피아노.


그래서 신시사이저를 찾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신시사이저를 비교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첫날, 선생님께 신시사이저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더니, 여러 장비를 찾아 보여주셨다.

“이게 제 꿈의 건반이에요”라고 잠깐 스치듯 보여준 그 건반.


나는 그냥, 첫눈에 반했다.

사랑에 빠지는 데 0.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의 신뢰를 높여주는 실험대상으로 완벽했다.


뱀파이어 피로 적신 듯 빨간 옷을 두른, 영롱한 자태.

수십 개의 이름 모를 노브와 버튼들이

“네가 만약 전문가라면 만져도 좋아”

허세를 부렸다.


누군가는 이 건반을, 건반계의 페라리라고 불렀다.


내 조건과 맞지 않는 기능들도,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져야만 했다.

이 건반의 모든 기능이 나에게 필요할 거라는 증거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최면을 걸었다. 너에겐 이 기능들이 필요해…


잠시 밴드 객원으로 함께 했던 건반형에게 무시무시한 낙원상가에 같이 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물론, 내 마음엔 이미 노드로 가득했지만, 다른 건반들도 찾아보고 비교해 본 뒤 구입하겠다고 합리적인 척 연기했다.


실제로 보니까 훨씬 예뻤다.

직접 만져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은 곳이 있었다.


아마 재고 끝물이었는지, 여러 레퍼런스급 다른 장비들을 끼워 팔고 있었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페라리를 샀더니 소나타가 딸려 왔다”


건반형의 단골집이라고 했는데, 다른 판매상들을 찾아봐도 이런 프로모션을 하는 곳은 없었다. 이곳이 유일했다. (형님과 국제미디에 재력과 건강이 항상 함께하길)

구입은 사이트를 통해 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이 정말 설렜다. ‘나의 곡을 만들라’는 선생님의 말과 노드로 소리를 만들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이 겹치면서 머릿속에 음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 한 편이 완성됐다.


다음 레슨 때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정말 그 건반을 샀냐고 재차 물으셨다.

그래, 마 이게 으른의 재력이고 결단력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600만 원의 지출은 큰 출혈이 따랐다. 12개월 무이자할부… 라 해도 큰 출혈이었다..

이후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자. 오늘 나는, 플렉스 하는 나로 사는 거다.


마감시간

매주 찾아오는 레슨 시간.

그리고 매주 새로운 곡을 만들어 가야 하는 즐거운 마감 스트레스.


곡을 완성해 간 적이 없었다.

매번 1절과 후렴까지만 만든 곡을 가져갔다.

스케치 요정이라고 불러도 좋다.


선생님의 가르침 방식은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늘 실전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배우다 보니, 매번 꼭 알아야 할 부분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이번엔 마음먹었다.

기초부터 제대로 쌓자.

그렇게 기초를 배우러 간 건데…

곡 만드는 게 너무 재밌어서, 어느새 원래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새 곡을 꼭 매번 가져올 필요는 없다”라고 쌤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만들었던 곡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작업해보기도 했다.

처음엔 듣기 좋았는데, 끝까지 만들고 나면 매번 지루해진다.

그렇게 버린 곡들이 수두룩했다.


가끔 카피 과제를 받으면 완벽하다는 칭찬도 해주셨는데, 우쭐해 있다가, 선생님이 그 곡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단순하게 가지 못하고, 늘 빙 돌아 먼 길로 갔을까.

생각지도 못한 방식들 앞에서 좌절했다.

특히 리하모니제이션(화성 재배치)하는 장면에선,

반도 이해 못 한 채, 묘기를 보듯 멍하니 감상했다.


플러그인 사용법,

그동안 감으로만 알던 공포의 용어들을 하나씩 재정립해 나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언가를 알아갈수록,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내게 또 하나의 미션이 주어졌다.


빨리 성장하는 법

우리는 언제나 빠른 길을 원한다.

빨리 돈 버는 법, 책을 빨리 읽는 법.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자극적인 문구에 기꺼이 낚이고, 돈을 쓰고, 시간을 쓴다.

유튜브에 낚시?영상이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노력하지 않고 빨리’ 도달하는 방법은 말해주지 않는다. 깨닫지 못하면 그런 낚시(라고 주장하는) 영상만 찾아다니는 부지런한 게으름뱅이가 된다.


절대적으로 쏟아야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더 효율적인 방법도 분명 존재한다.


나도 선생님께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다른 방식으로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단 몇 년 만에 프로가 될 수 있었나요?”

“어떻게 하면 빨리 배울 수 있죠?”


예전에는 샘플 하나하나 신중하게 넣고, 노브 하나하나 신중하게 돌렸지만,

학생을 가르치면서부터는 순발력이 필요해졌다고 했다.

학생이 모르는 걸 물어오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답을 알려주어야 했기 때문.


나에게 있는 두 선생님이 같은 말을 한다.

“가르치면 실력이 빨리 는다.”


소흐선생님

영어 공부 수다방에서 기타 교실을 열어달라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는 “내 실력에 무슨 선생이냐”며 계속 거절해 왔다.

건반을 배우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목적을 또….. 잊어버리고, ‘기타를 가르쳐 볼까?’ 조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나도,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이 맴돌았다. 학생이 질문한 답을 모를 때, 그리고 그걸 들켰을 때의 ‘쪽팔림’과 ‘죽음’을 비교하면 어떤 게 나은 선택일까 저울질해 보았다.




(추가)

추가시간

선생님은 매번 30~40분 정도 레슨을 더 해줬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건가? 싶었지만, 나중에 보니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원래 돈을 받지 않는 강의는 일찍 끝내고, 돈을 받는 강의는 더 오래 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은 참 잘 컸다…


그게 고마워서, 나도 매번 쌤 드실 커피를 사 갔다.

어느 날은 40분 일찍 도착해서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레슨 들어가기 10분 전에 주문을 했다.

커피를 받아 들고 막 자리로 돌아가려던 순간, 선생님의 동생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동생분 머리 위에 한참 ‘로딩 중’ 아이콘이 뜨는 것 같더니,

“오빠가 소흐님 드실 음료 사 오랬는데요…”라고 말했다.


킹치만, 내가 먼저 샀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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