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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by Yuni

'당신은 운명을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도망치기 바쁜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들이 말하는 운명과 내가 말하는 운명은 엄연히 다르다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저 타인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인 내가 과연 스스로의 운명이 있다 한들 그것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조차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가장 두꺼운 벽으로 다가온 건 사람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운명적이라 여겼던 순간에 있던 것 또한 사람이었다.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이었을까. 그래서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빛인지 어둠인지 확신할 수 없기에 그것들을 위해 마음을 내어줄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선택은 운명을 등지고 멀어지는 것 밖에 없었다. 모두가 알지만 나 혼자서만 모르는 완전히 잘못된 판단 그 자체였다.


그런 나에게 도 알려주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운명이라 여길만한 타이밍에 인연이라 여길만한 순간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신이 있다면 이것이 네가 숨 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주려는 듯 보였다.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니 머릿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리가 들렸다. 띠링.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운명이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빛은 어둠과 늘 함께라는 듯 말이다.


사람들은 운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타인의 운명만 바라보고 부러워한다. 정작 자신에게 온 운명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말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 반짝이듯 기적처럼 찾아온 운명이 무엇이 되었건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눈부시도록 반짝이지 않을까. 운명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것이 어둠일지라도 운명이라면 말이다. 고로 운명은 이야기한다. "넌 너무나 소중한 존재야. 그래서 내가 존재하는 거야. 그러니 멀어지지 말고 나를 있는 그래도 바라봐 줘."


나에게도 드디어 속삭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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