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디 귀한 어중간한 계절
1년 365일 중 가장 어중간한, 하지만 짧은 만큼이나 귀한 계절, 10월의 가을이 돌아왔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봄이 찾아오듯 올해의 10월은 유독 눈부신 봄 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 순간 내가 있었던 어둠 속 긴 터널에서 드디어 빛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이라는 얇지만 튼튼한 끈을 놓치지 않고 있던 탓에 지금의 빛이 빠르게 다가온 듯싶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쏟고 머리를 정신없이 굴렸더니 어느새 빛 속으로 걷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다.
도화지 같은 작은 노트를 하나 사서 내 빛으로 가득 채울 준비를 한다. 그 빛으로 가득 찰 곳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생각의 시작은 몇 달 전 우연히 들렸던, 작지만 은은한 향이 퍼지는 책방이었다. 내 취향의 책들이 가득한 곳이었고 고요했으며 살며시 스며드는 향기에 매료된 마치 빛 같은 공간이었다. '나도 이렇게 환한 빛으로 가득 채우면 어떨까? 너무 눈부시지만 않다면?' 생각이 멈춘 그 순간, 내 얼굴에도 봄이 스며들었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부터 시작했다. 스스로를 직면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지금의 이 서툴기 그지없는 글을 써 내려가는 중이지. 정말 꼬여버린 실타래 같은 글일지라도 나에겐 환하기 그지없는 눈부심이니까.
여태껏 책은 그저 내 온 감각을 집중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하얀 노트에, 그리고 작은 공간에 가득 채워질 나의 빛, 또 다른 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고 빛을 찾아내고 그리고 스스로 그 빛을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가장 애매하지만 그만큼 소중한 10월의 가을은 아이러니하게도 1년 중 가장 화사할지 모를 시간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