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잃은 계절

겨울 끝자락, 봄의 입김

by 슬로하라


처음 맞은 계절은 겨울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시작은 무언가를 새로 한다기보다는 이미 단단히 닫혀 있는 세계에 조용히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낯선 땅에서의 시간은 항상 계절보다 한 발 늦게 따라다. 겨울은 빠르게 깊어졌고, 나는 그 어둠보다 더 먼저, 말을 잃고 있었다. 언어를 모르니, 그해 겨울 끝자락의 침묵은 더 두터웠다.

듣지 못했고, 말하지 못했고, 그래서 마음도 그 어둠 속에서 점점 무거워졌다. 누가 말을 걸까 봐 귀를 닫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그 무렵, 속에서는 무언가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대답하고 싶었고, 묻고 싶었고, 그저 말을 한번 꺼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요란한 갈급함은 입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어떤 날은 참을 수 없이 시끄러웠다.


나는 겨울 내내 대답을 준비했고, 그러지 못한 날들은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마트에서도, 길에서도, 모두가 내게 말을 건넸지만 나는 어떤 문장도 꺼낼 수 없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다 도움의 손길을 붙잡을 수 있었고, 나는 알파벳부터 따라 읽기 시작했다. 읽는다는 건, 그저 글자를 아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말의 준비를 시작하는 일.

소리를 내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 조심스러운 발음 하나하나가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그리고 계절이 한 번 더 바뀌려는 즈음,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또 한 계절을 지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내 안에서 선명하게 울린 말 하나가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그 봄에 내가 가장 먼저 다짐한 것이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을 잃었던 계절 끝에서,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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