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넘어진 순간 되찾은 웃음

병 진단 후 마음가짐

by U찬스



10년 전쯤, 출근 시간에 이런저런 준비로 예정보다 늦게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열심히 뛰어서 지하철역에 다다랐지만, 이미 도착해 있던 지하철은 곧 출발할 듯 보였다.

그 시간을 놓치면 지각일 것 같아, 문이 닫히기 전에 코털이 날리도록 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온 신경이 여기로만 쏠렸다.

'열 걸음만 더, 아홉 걸음만 더 뛰면 저걸 탈 수 있다'

하지만...

습기 찬 승강장 바닥 탓이었는지, 새로 산 신발 밑창의 문제였는지 탑승 직전, 그만 승장장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넘어지거나 미끄러져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픈 것보다 그 순간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 찰나의 순간 너무 창피해서 나 또한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부끄러운 것보다 더 큰일이 벌어졌다.

세게 넘어지며 두 팔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그 사이 나의 윗니가 몸 전체를 지탱해 버린 것이었다.
약하니 약했던 나의 윗니 세 개는 순... 간...

엉망이 돼 버렸다.


그 모습으로 출근할 수는 없어 회사에 못 가겠다고 서둘러 연락했다.
119를 부를까도 했지만, 지하까지 내려오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절뚝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제일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여러 검사 결과 상, 다행히 손과 다리는 타박상 정도로 그쳤지만, 앞 윗니 3개는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치과로 옮겨와서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잇몸까지 골절되어 새 이로 교체하려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된다고도 했다.


며칠 동안 출근도 못하고 집에 누워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몸도 여기저기 아파 죽겠는데, 안 써도 되는 연차까지 써가면서 이게 무슨 꼴이람. 아이! 속상해.'

나에게만 불행이 닥친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한 마음밖에 없었다.
그렇게 분노의 며칠이 지나고 새 이로 교체를 하는 날이 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새로 해 넣은 이가 마음에 쏙 들었다.

앞니가 고르지 못한 것이 항상 콤플렉스였는데, 몇 개만 교체했을 뿐인데도 이가 꽤 가지런해진 것이었다. 게다가 잇몸 골절로 인해 여러 혜택을 보면서, 미용 목적이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가 마무리되었다.


'나도 이제 입 안 가리고 웃을 수 있다!!!'

서럽다고 찔찔 짤 때는 언제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 평생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게 된 것이었다.


나에게도 그랬듯 누구에게나 위기는 닥칠 수 있다. 하지만 평생 그렇게 살아가라는 법은 없다.
내 경우처럼 며칠도 못 가서 그 일로 인해 새로운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변화가 삶의 희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노인이 기르던 말 한 마리가 인생에 화를 가져다줄 수도, 복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이란 거다.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고통이 앞으로 내 삶에 또 다른 길을 열어 줄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행복이란, 마치 노인이 기르는 말처럼 언제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오늘의 고통을 훗날 웃으며 이야기할 그날을 기다려 보자.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지도 모른다.

keyword
이전 25화노력으로 옮긴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