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기쁨
첫째와 둘째가 어릴 때의 일이다.
5살과 3살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은 테이블에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첫째가 조용히
무언가를 식탁 위에 올리더니,
그중 몇 개를 신중하게 골라
앞으로 쓰윽 밀어놓는다.
곧이어 둘째도 무언가를 고심 끝에 고르더니
쓰윽 손으로 밀어
테이블 정중앙에 가져다 놓는다.
흡사 영화에서 보던 거래의 한 장면 같다.
도대체 뭐길래 어린아이 둘이서
저리 비장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거래하고 있는 물건의 정체를
알기 위해 가까이 가보았다.
그것은 바로.. 마이쮸랑 젤리였다.
큰 애가 커다란 젤리 2개를 내밀자
작은 애가 그보다 좀 작은 마이쮸 3개를
내밀며 원만한 합의가 이루진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아이들은 자라면서
꾸준하게 많은 거래를 했다.
소중한 장난감을 한 번씩
돌아가면서 교환해 놀기도 하고,
츄파춥스 같은 막대사탕을
번갈아가며 핥아먹기도 하고,
서로의 빵도 똑같이 한 입씩 베어 물면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거래'를 했다.
물론 늘 원만한 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거래가 파탄 나면 싸우거나 울면서 달려와
상대방의 사기(?) 행각을 일러바치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다양한 거래들의
중재자가 되어야만 했다.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4명쯤 되니 어느덧
판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법이라도
좀 공부해둘껄하는 후회도 들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분쟁이
나날이 늘어가는 관계로
분쟁 조정 관련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규칙, 규칙, 또 규칙을 계속 만들어
다가올 분쟁을 효과적으로 대비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도 관심 없는 것에는
분쟁하지 않아 일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를 거래하는 일은 없다.
책을 거래하는 일도 없다.
오히려 이런 때는 서로 먼저
양보하는 훈훈한 미덕이 가득하다.
첫째는 유독 자신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아무 대가 없이 남에게 무언가를
주는 일이 절대로 없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일대일
교환 법칙만이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물건에 동생들이
손을 대면 불같이 화를 낸다.
동생들이 과자 몇 개라도 더 많이 가지면 안 된다.
모든 숫자, 모양, 크기까지 똑같아야 한다.
첫째가 유독 왜 이런 게 심할까 생각을 해보니
동생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더 귀엽고 눈망울도 반짝이는
어린 동생들에게 축복이 다 가버릴까
걱정해서 그런지 제 것을 정말 열심히 챙긴다.
그래서 받는 건 참 좋아하지만
그냥 거저 주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런 첫째가 '그냥' 동생들을
챙겨줄 때가 있다.
어느 햇살 밝은 날, 학교에서 받은 간식을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었을 때 깜짝 놀랐다.
심지어 어떤 날은 피 같은 용돈으로 산
마이쮸랑 젤리들을
동생들에게 하나씩 주는 것이 아닌가!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지켜봐도 아무 꿍꿍이가 없었다!
자신이 아끼는 애착 장난감을 동생에게
무심한 듯 쓱 건네거나
작은 젤리 하나도 무심한 듯 '자~' 하면서
주는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애도 아니고 어떻게 첫째가 저런 행동을?
도대체 왜? 이유가 뭐지?
갑자기 왜 동생들한테 잘해주는 거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했을 때 결국 나는 감동한다.
대견하고 기특하다.
폭풍 칭찬을 해준다.
아이들이 효율적이고 정확한 거래를 했을 때보다
이럴 때 사랑스러운 마음이 샘솟고,
기특하고 이쁘다.
이치에 맞는, 논리적인 수많은 교환들이
지금까지 있었지만 감동은 없었다.
아마 여기에 반대되는 곳에 진짜 감동이 있을 것이다.
마라톤 결승점 직전에 쓰러진 여성을
세 명의 남성이 부축하여
결국 끝까지 골인을 하게 해 준 일화에 감동한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가다가
접촉 사고를 낸 아기 엄마가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자
꼭 안고 다독여준 어느 중년 여성의 일화에 감동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 박사는
자신을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세요.'
멋진 치료 방법을 기대하고 왔던
환자들은 실망하고 돌아갔지만
2주 동안 박사의 조언대로 한 결과
대부분 환자들의
우울증이 점점 사라졌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이런 게 바로 '주는 기쁨'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는 기쁨에서 진짜 감동이 온다.
주는 기쁨에서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
미국의 록펠러는 30대 초반에
이미 백만장자가 되고
50대 초반에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지만
55세에 불치병에 걸려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낙담한 그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하루는 병원 로비에서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다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라는
성경 구절을 보고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이때 병원비가 없어 절망하고 있는
한 소녀와 어머니를 지켜보게 되었고,
이를 남몰래 도와주었는데 소녀가
나중에 기적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록펠러는 그때부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 록펠러는 나누는 인생을 살면서
주는 기쁨 가운데 98세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훗날 그의 자서전에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라고 고백했다.
인생의 전반기에 그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회사를 세워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속이며 많은 돈을 벌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효율적'이고
'좋은 거래'를 많이 했지만
인생의 전반기 55년보다
후반기 43년이 진정으로 행복했다는
록펠러의 고백은,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잘 알게 해 준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사도행전 20:35)
- 오늘 배운 수업 내용
1.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자.
2. 주는 기쁨을 누리며 감동이 있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