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지 않은 영광, 기쁘지 않을 왕관.
그날, 내가 떠나던 날.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등을 돌리기 직전의 얼굴,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있다. 그 얼굴이 차갑고 단단해서 나는 오히려 안심했다. 그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낯선 타인이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네가 나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웠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알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널 추켜세우며 영광을 안겨주었겠지. 그들만의 리그에서 넌 새로운 자리, 새로운 왕관을 얻었겠지. 그것이 무겁게 느껴졌을까? 아니면 그렇게나 바라던 것이었기에 가벼웠을까? 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선 채로 그 장면을 상상했다. 기쁘지 않은 영광, 기쁘지 않을 왕관.
한때 나는 정말로 네가 잘되길 빌었다. 너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남들이 잘되길 빌며 살았다. 그들의 잘됨이 나의 잘됨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게 삶의 이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믿던 세계는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남이 잘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뒤처지는 일이었다. 그 간단한 진실을 이해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세상은 전쟁터였다. 누군가 웃으면 다른 누군가는 울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 전쟁의 일부였다. 너와 나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치열하게 밀어내고, 뒤로 물러서게 하면서도 동시에 끌어당겼다. 내가 빠져나가고 네가 자리를 채우는 것. 그것은 어쩌면 예정된 싸움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창문을 닫았다. 겨울 공기가 무겁게 밀려 들어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손끝의 허전함은 그대로였다. 창문을 닫아도그 허전함은 메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그것을 메우려 하지 않았다.
이제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허울뿐인 그 명예를 대신 찾아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다만 가끔씩 스스로 묻게 된다. 그 자리에 앉은내가, 그 명예를 등에 짊어진 내가 진정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내 자리를 떠났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그 빈자리에 새로 앉을 누군가를 찾았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본 그 사람이 떠올랐다. 새로 들어온 자리에서 웃음을 띤 얼굴, 환호 속에서 떠받들어지는 모습. 마치 내가 떠난적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광경이었다.
문득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그게 질투라고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명예라는 것은 결국 빛나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손뼉을치고, 이름을 부르고, 환호하는 순간에도 그 안에 있는 고독과 무게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그 무게를 안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어깨를 눌러왔는지, 그리고 그것이결국 사람을 어떻게 뒤틀리게 만드는지.
그 사람은 이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매일 조금씩 어깨가 굽고, 그 명예의 왕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달아볼 가치가 있는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왕관이든, 그 자리거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그 잔상들. 박수 소리, 흩어진 종잇조각,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하던 목소리들.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리를 향한 것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그 애매함이 내 뒤를 쫓아왔다.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지금은 더 단단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명예가, 그 왕관이, 결국 그 사람을 어떻게 만들지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다 지나가고 난 뒤의 그 얼굴이 어떨지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버린 것과 지금의 내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대답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 답이 필요 없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