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의 예술상점 Dec 14. 2024

17. 결핍

이 광장은 차라리 고요한 것이 나을 것이다.

광장의 사람들은 결함과 결핍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을 끌며 지나가고, 어떤 사람들은 걷기조차 귀찮은 듯 어깨를 축 처뜨린 채 발끝만 움직인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 버린 채, 그곳을 지나친다. 만난 거지에게 껌조차 사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은 말라 있었다. 눈빛은 텅 비어 있고, 손끝에는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런 말 없이,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지나갈 뿐이다.


“저들이 내 아픔을 알겠어?”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목소리는 낮고, 비수처럼 날카롭다. 그들은 말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이미 너무 오래 써먹은 것처럼 느껴진다. 반복적이고지겨운 이야기처럼 들린다. 손끝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몸속을 지나가는 고통, 그들은 그저 한 사람의 부품처럼 또 다른 기계의 일부분으로 소속되어 살아갈 뿐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한 사람이 중얼거린다. 그는 어깨를 처지고, 바닥을 쳐다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표정은 불안과 초조로 가득 차 있다. “누구도 내 아픔을 이해하지 못해.” 또 다른 사람이 답한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듯, 술을 연신 퍼먹는다.


광장의 끝자락,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이 흔들렸다. 그들 중 하나가 손에 쥔 촛불을 들어 올렸다. “너도 똑같아. 아무것도이해하지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해.” 그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떨렸다. “내가 뭘 몰라? 내가 모르는 게 뭔데?” 다른 한 사람이 소리쳤다. 그의 손끝에는 빈 병이 들려 있었고, 발걸음은 위태로웠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이 외치며 촛불을 휘둘렀다. 뜨거운 밀랍이 공중으로 흩어지고, 불길은 순간 커지며 상대의 팔을 스쳤다. “네 손으로 나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네가 내고통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어?” 그 작은 불씨는 그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무기처럼 번쩍이며 부딪혔다.


여기에 청각 장애인인 그녀가 있다. 그녀는 모든 소리들 속에서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 곁을 지나치며 소리를 지르지만, 그녀는 그들에게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녀에게 소리쳤다. “야, 이 사람아! 왜 이렇게 대답도 안 해?”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요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다른 사람이 덧붙였다. 그들은 당황하고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그녀가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듣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편해하며 소리를 높였다.


“너, 귀가 먹었어? 내가 하는 말을 못 들으면 어떻게 해?” 남자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며, 그녀의 귀가 닫혀 있다는 사실을 고통스러울 만큼 강하게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런 말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손짓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바꾼 것뿐이다. 그녀의고요한 세계는 시끄러운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들의 소리가 그녀에게 닿지 않으니, 그들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한 사람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그 말은 비어 있었다. 그 사람은 그녀의 고요 속에 숨겨진 깊이를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고요 속에서 단순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하나씩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 무엇인가가 그녀의 눈빛과 손짓 속에서 점점구체화되었다. 그녀의 고요함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그고요 속에서 흐르는 리듬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진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그들의 소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자신만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고요는 외로움이 아니라, 차라리 깊은 이해의 순간이었다. 그 고요 속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


이 광장은 차라리 고요한 것이 나을 것이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목소리, 세상의 소음에 묻히지 않는 자기만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소리가 흩어지고, 그것이 끝없이 반복되는 소란 속에서, 소리만 없어진다면 혼탁한 소음에 묻힌 맑은 영혼을 다시 꺼내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귀머거리가 되어버리고 싶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소리가 없다면, 그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이 내게 닿지 않도록, 그들의 시선이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차라리 그 모든 소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좋겠다.


‘그래, 고요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 나의 생각을 정리하며 펜을 들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소리가 없는 고요 속에서, 그 무엇보다도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