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는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의 나는 텔레비전이 규정한 삶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 만약 내가 이 기준을 벗어나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마치 내 안의 무언가를 흔드는 철학적 선언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실험이었다. 기존 문화가 부끄러움과 체면으로 억압한 개인의 진정성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모임은 철학적 실험이에요. “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성숙하지 않음’이라는 틀로 세상이 억압해 온 것들을 되찾고 싶어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삶을 발견하기 위해요.”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끌리기 시작했다. 문화가 우리에게 강요한 기준과 이상은, 때로는 우리가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었고, 우리 안의 진정성을 가리기도 했다.
몇 주가 지나자, 나는 내 삶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치부를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용기를 내는 문제가 아니었다.그것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철학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 모임에서 나는 문화가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깨달았다. 기존의 문화와 철학은 우리를 규정하고 억압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화는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
그들은 기존의 문화적 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탐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웃음은 단순히 가벼운 조롱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이 강요한 부끄러움과 실패라는 굴레를 벗어던지는 선언이었다.
삶의 고통과 부끄러움조차 우리가 사는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라 자부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문화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었고, 우리가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새로운 문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적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텔레비전 속의 화려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작은 물결. 그 물결은 점차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느 날, 모임의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도 결국 세상을 바꾸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웃기게 보이던 바보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잖아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우리는 성숙하지 않은 바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바꾸었고, 그로 인해 세상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철학과 문화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것은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성숙하지 않은 바보들의 모임은 더 이상 모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