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평화는 중요해. 다른 그 무엇보다.
전쟁, 싸움. 그외 잡다한 다툼들에까지,
아무리 숭고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산다,
이 한 줄의 본질은 이길 수가 없거든.
빼앗거나 빼앗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물론 빼앗는 쪽을 대다수가 선택하겠지.
그렇기에 우리는 이를 악 물고 견뎌내야 했는데.
평화는 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손으론 미사일 버튼을 누르지.
앞에서는 안심시켜놓고 뒤로는 남몰래 칼을 꺼내.
평화를 이야기하며 악수하던 그 손으로
직접 앞에 있는 사람의 목을 칼로 쑤셔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머릿속으론 계산기를 두드려대지.
'이 전쟁을 벌이면 내가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이따위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지.
'이해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을 지 몰라도,
이것이 평화로운 세계로 가기 위함이다.
몰라도 괜찮다.
내가 다 떠안을 테니 부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라.'
말같지도 않은 소리.
그들에게 평화란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징조일 뿐이야.
전쟁이란 한몫 단단히 벌 수 있는 기회인 것이고.
난 그걸 이제와서야 비로소 인지하게 된 거고.
멍청하게 말이야."
품에서 권총을 꺼내 만지작거리는 그.
"약탈, 방화, 강간.
이 셋이 뒤따르지 않는
전쟁이나 싸움을 본 적이 있나?
없을 거야. 나도 못 봤거든.
마치 승리의 기념품인 마냥 누군가를 해하려고만 하지,
누군가가 해를 입는 걸 막아주려고 하지 않잖아.
당연하다는 듯 금품을 빼앗고, 집에 불을 지르고, 억지로 몸을 취하고,
인간의 역겨운 상상력은 언제나 현실을 뛰어넘지.
한 마을의 전쟁이 끝나면 그 마을은 더는 존재해선 안돼.
지워버려야만 해.
지도에서도, 머릿속에서도.
시멘트와 벽돌, 철근, 사람.
이것들이 타는 냄새를 맡아본 적 있어?
놀랍게도 말이야,
그것들은 모두 같은 냄새가 나.
똑같은 냄새가.
처음에는 두려웠지.
내 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거든.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더는 내 몸에서 그 냄새가 나지 않게 됐어.
그것들을 태워도 그 냄새는 나지 않게 됐지.
그때는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져버리고 만거야.
그 냄새에 코가 마비되어버린거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수많은 전쟁통에서 나는 살아남았어.
수많은 싸움들 속에서도 나는 살아남았지.
장소는 달라도 언제나 같은 곳에 있는 기분이었어."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탄창에 총알들을 집어넣는 그.
"난 평화롭게 지낸 날들보다
피 튀기는 폭력에서 지낸 날들이 더 많아.
이 폭력의 시대는 조만간 끝이 날 거다.
넘실거리는 피로 얼룩진 바다에 대한 것들은
책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될 거다.
후대의 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참 멍청하고 불쌍하다, 우리처럼 서로를 사랑하면 되는데.
뭐 때문에 저렇게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었을까.
이렇게 이야기 할 거다, 그렇게 생각했지."
그는 제법 묵직한 권총을 들어올린다.
"한때는 나도 순진했어.
상관, 정치인, 기자 등등.
그 치들의 말을 믿었거든.
내 손에 묻는 피가 아이들 식량의 양분이 되고,
내 손에 죽는 이들은 내가 아니었다면
다른 이들을 죽일 이들이었다고,
내가 있음으로 인해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왔고 그렇게 살아왔지.
최소한의 출혈로 상처의 피를 멎게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도려낼 부분은 도려내야
남은 것들이 더는 썩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딴 논리가 그때에는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는지.
험상궂은 그들의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탕-!
그는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훈장들과 상패들, 높으신 분들과 찍은 사진이 든 액자들을 향해
장전한 권총을 쏘아댔다.
"전쟁터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나면
내 가슴팍에는 훈장들이 더해지고
내 어깨에는 별들이 더해졌어.
그렇게 새 훈장들과 별들을 달고
새로운 전쟁터에 가 새로운 누군가를 죽였지.
누군가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삼촌,
누군가의 형, 동생을 죽인 거야.
총알 하나로 사라질 인생이라면
어차피 가만히 냅둬도 사라질 인생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했어.
이기적이고 오만한 새끼.
반면 누군가는 나를 존경어린 시선으로 우러러보기도 했지.
전쟁 영웅.
이 칭호가 한때는 나도 자랑스러웠어.
내가 그들을 지켜냈으니,
그들도 나를 지켜내줄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 약속의 증표라고 느껴졌었으니까.
자그마한 금속쪼가리.
이딴 것들이 뭐라고.
나는 그렇게 뿌듯했을까.
그것들은 그런 의미였던 거야.
'이 사람은 누군가를 해치고, 죽이고,
그 누군가의 삶을 박살낸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 증거를 이 옷에 박아넣습니다.
마음껏 욕하고 돌 던지십시오.'
그래도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기엔, 나는 용기가 없었으니까.
다만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기만 할 뿐이었지.
그런데,
높이, 더 높이 올라가다 보니 말이야,
그때에야 알게 된 게 뭔 줄 알아?
내가 믿어왔고 살아왔던 평화가
실은 전쟁과 형제였었더라고.
전쟁이 있어야만 평화가 존재하니,
그 둘은 어찌보면 같은 것이었던 거야.
그것도 모르고 나는 멍청하게 그 끝을 찾으려 했던 거고.
전쟁의 당위성을 위해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들.
따스하고 편안한 집에서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티비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
그들마저 지키려 우리는 싸워온 거야.
웃기지도 않게."
탕-!
탕-!
벽에 걸려있던 것들이 바닥에 떨어져
예민하게 부닥치는 소리가 방 안에 퍼진다.
"평화란 게 사실 말장난이야.
평화라는 단어는 존재해서는 안 돼.
전쟁이 없어야 평화가 있는 게 아니라,
평화가 없어야 전쟁이 없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권총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그.
"나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의 사람들을 죽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나의 자식들을 죽이는 이의 자식들을 죽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내 쪽에 선 사람이 죽으면
다른 쪽에 선 사람도 죽어야한다는 것.
나의 하나가 사라졌으니 너의 하나도 사라져야 한다는 것.
누구도 희생하려하지 않았어.
희생? 아니지. 그것들을 손해라고 부를 뿐이었으니까.
그런 족속들을 위해 나는, 우리는 싸워왔던 거야.
내가 총을 든 이유는
내 등에 업힌 이들이 총을 들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그들은
너무나 다른 곳에서 너무나 같은 방법으로 내가 되어 있더라고.
그들의 눈빛을 마주한 적 있어?
그 공허한 눈빛을?
그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더는 사람같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도망치고만 싶었어.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조차 남기지 않고.
아니, 남기지 못하고.
어쩌면 그때부터 든 생각이었는지도 몰라.
지켜야 할 것들이 나를 지키다니,
내가 할 일이 줄어들었네?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이런 소름끼치는 생각 말이야."
그는 텅 비어버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 내가 아닌 허공을 바라본다.
"나도 이제는 모르겠어, 아무것도,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평화라는 건 지워져야 해.
사전에서도, 우리들의 머릿속에서도.
언젠가 평화가 당연해지는 시간이 도래한다면
자연스레 평화는 사라지겠지.
당연하게 손에 쥐고있는 것일 테니까."
다시 권총을 잡고 들어올리는 그.
"나는 그 시발점이 이 총성 한 번이기를 바라.
전쟁터에서 무수히 많이 들려온 소리들을 하나로 모아 만든
거대하고도 장엄한 종소리로 느끼기를 바라.
누군가가 누군가를 해친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다.
결국 내가 나를 해치고, 내가 나의 것을 빼앗는 것이란 걸,
우리라는 것은 단순히 나와 너의 조합이 아닌,
전혀 새로운 개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되기를 바라.
고작 한 번,
그 한 번의 벽을 넘지못하고
스러져간 나의 전우들.
그들의 시체를 발판삼아 나아가야만 해.
물론 그 맨 아래에는 나도 있겠지.
얼굴조차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뭉개진채로.
나는 그날이 오길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
이런 나의 숭고하고도 간악한 생각,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실감하게 될 거야."
탕-!
그는 그렇게 권총으로 자기의 머리를 날렸다.
그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지는 걸 보면서도
나는 감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또렷이 바라보았다.
그의 심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는 미치지 않았었고, 더할 나위 없이 맨정신이었다.
나는 그의 권총을 주워 탄창을 살펴보았다.
그가 쏜 한 발,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빈 탄창을 다시 총에 넣고 장전했다.
나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그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틱.
금속의 둔탁한 소리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다시 한번 권총을 장전했다.
머리에 가져다 댔다.
방아쇠를 당겼다.
틱.
언젠가 나도 그처럼 될까.
총알 하나를 장전해 내 머리를 터뜨리게 될까.
권총에 묻은 그의 피가 내 손에도 묻었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