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밤.
한 손에 총을 든 군인 두 명.
그 중 한 명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불을 붙인 뒤 연기를 내뱉는 군인.
옆에 선 군인에게 피울거냐고 묻는 듯 담배갑을 건네지만
앞만 바라보며 경계를 한다.
그럼 말라는 듯, 품에 다시 담배갑을 넣는 군인.
연기를 깊게 들이 마신다.
군인은 담배를 피우며 입을 연다.
"야, 내가 죽인 북한군이 몇 명인지 알아?
나도 몰라 임마, 그냥 총들고 갈기는 거야.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어쩔 땐 총알은 원래 빨간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군 시체들을 회수하고,
적 시체들은 한곳에 모아 태우는데,
그 와중에도 내가 죽인 놈들은 알아보겠더라고.
신기하게도 말이야.
뭐.. 미안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아.
그런 생각은 여기서는 사치니까.
내가 먼저 죽이지 못했더라면,
저놈들이 내 시체를 모아 태웠을테니까 말이야."
들고있던 총을 새삼스럽게 잡아보는 군인.
"총이란게 이렇게 무겁고 시끄러울 줄이야.
어렸을 때 나뭇가지들고 총인 척 가지고 다니던게 엇그제 같은데..
지금 이 꼬라지로 살게 될 줄이야.
세상일 모른다, 모른다하더니 정말이었네.
하긴.. 나만 이런 것도 아닐 텐데.
이런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살아남았으니까 가능한 거지.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대답도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는 동료 군인.
"재미없는 놈..
난 있잖아,
내 반대편에 선 저놈들이 움직이면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저놈들을 죽여.
손가락 한 번 놀리면 한 명이 죽지.
총알 하나의 값이 목숨 하나와 같은 값이라는 거야.
이상하지 않냐?
이 총과 탄창 하나가 적 한 부대와 같은 값어치를 지닌다는 소리인데..
괜찮은건가? 이대로도?
물론 괜찮지.
난 괜찮아.
아니, 괜찮아야만 해.
나는 살아남을 거거든.
이승만이건 김일성이건 뭔 상관이야.
남쪽이건 북쪽이건 무슨 상관이냐고.
개처럼 끌려온건 저 새끼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인데.
도망칠 용기도 없는 쓰레기들.
죽이라면 죽이고, 잠도 자지 못하고 경계 근무 서라고하면 서고."
담배를 다 피우자 새로운 담배를 꺼내는 군인.
"내 소원은 둘 중 누가 되었든 목이 빨리 잘리고
이 전쟁이 끝나 가족들의 품에 돌아가는 거야.
천국 갈 수 있다는 건 꿈도 안 꾼다.
손에 피 묻히는 건 나 혼자면 돼.
우리 가족들은 언제나 착하게 살았거든.
내 어머니, 아버지, 누나, 동생들.
내 가족들만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어.
아니, 어쩌면 이미 지옥에 있는건가?
뭐.. 큰 차이는 없겠지.
천국, 지옥 이딴거 믿지도 않았었는데.
무언가를 믿는다는게 이런 걸까?
믿고싶어서 믿는게 아니라
믿지 못하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들 말이야.
고작 그거 하나일 뿐인데, 그게 뭐라고 이 난리들일까, 그치?"
휘파람을 불어보는 군인.
"우리 가족들이 조금만 더 북쪽에 살았다면
나는 우리가 쏴 죽여야 할 빨갱이가 됐을 거야.
뭐, 난 상관 안 해.
빨갱이든 파랭이든 뭔 상관이야.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사람이 사람에게 죽는다.
이 개같은 전쟁터에서 유일하게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거 하나뿐이야.
사람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거 말이야.
대가리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팔다리들이 죽고,
팔다리들은 팔다리들끼리 싸우다 죽고.
시체는 썩어문드러져 찾을 수도 없고.
그렇게 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닌데.
하긴 누가 알았겠냐.
아무도 몰랐겠지.
전쟁이 그런 거니까.
갑자기 벌어졌으니 갑자기 끝날 거야.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윗대가리들은 말이야 우리를 숫자로만 생각해.
우리 병력이 오백, 적 병력이 삼백이면
우리가 이백 남는다는 정도?
우리의 이름도 몰라, 고향도 몰라.
알고 싶지도 않겠지.
알려고하지조차 않을 거고.
늙은이들의 지휘봉 움직임 한 번에 젊은이들 이삼백명이 죽는다.
그 늙은이들은 그 지휘봉의 무게를 알까?
내가 들고있는 이 총의 몇십배나 되는 무게를, 진심으로 실감하고 있을까?
어제 죽은 내 친구는 수류탄에 터져 죽었어.
그제는 내 옆자리서 코 골며 자던 놈이 머리에 총알 맞고 죽었고.
오늘 살아남았다면 내일도 살아남기위해 자야하지.
어제 죽지 않았으니 내일 죽을까?
내일도 살면 모레 죽을까?"
담배를 비벼끄는 군인.
침을 뱉는다.
"사람은 언젠가 때가 되면 다 죽어.
다만 그때가 지금이라면 억울할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
그나저나 그거 알아?
언젠가부터 더이상 가족들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
그래도 난 편지를 적어서 보내지.
집에 돌아가면 우리 가족들, 하나하나 안아줄거라고.
어머니, 아버지 등에 업고 동네 한 바퀴든 열 바퀴든 돌 거라고.
편지 내용들도 많이 달라진 거야.
처음에는 지금 처한 현실들을 적어서 보냈지.
전선에 투입되고, 빨갱이들을 죽였다고. 집에 가고싶다고.
지금은.. 현실보다는 꿈을 적지.
집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 거라고.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어도 좋고,
어머니를 따라 가게 일을 도와도 좋고.
아니, 무슨 일이든 할 테니 살아서 돌아간다면 제일 좋고.
편지를 적을 때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져.
현실과 꿈의 괴리가 느껴질수록 나는 무덤덤해지고.
이젠 현실이 꿈보다 더 악몽과 가깝게 맞닿아있지.
꿈 속에서 난 골백번도 넘게 더 죽었어.
꿈에서 깨어나면 마치 죽으려는 듯이 달려들고.
내가 죽인 놈들은 마지막으로 어떤 생각과 함께 눈을 감았을까.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알고싶지 않아도 말이야."
철모를 고쳐쓰는 군인.
"만약 가족들이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사는 중이라
나 같은 괴물이 필요하지 않아서 편지를 적지 않는 거라면 나는 만족해.
피 맛을 알고 나면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단 걸 알거든.
근데 만약 가족들이 다 죽어서 편지를 보내지 못하는 거라면?
그래도 난 가족들한테 편지를 보낼 거야.
그리고 날 밝으면 저 빨갱이들한테 총을 쏘겠지.
우리 가족들 가는 저승길 동무들은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좋으니까.
구름 위에서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야.
그곳에는 빨갱이도, 뭣도 중요한 일이 아닐 테니까."
군인은 품에서 주섬주섬 사진을 꺼낸다.
옆의 군인에게 보여준다.
"이 사진 좀 봐 우리 가족 사진이야.
계속 꺼내고 쓰다듬느라 이젠 얼굴마저 희미해졌어.
나, 더는 가족들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
우리 아버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라?
우리 어머니 키가 어느 정도셨더라?
우리 누나, 동생들은 몇살이었더라?
아니, 애초에 내가 가족이 있었던가?
이 사진도 어쩌면 미쳐버린 내가
전쟁통에 주워서 가족이 있었느니, 마니 하는 걸수도 있어.
그래.. 그럴 수도 있어.
근데 말이야, 그게 뭐가 중요해.
목표가 있다는 게 어디야."
군인은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난 알고있어.
언젠가 이 전쟁은 끝날 거야.
끝이 없는 건 이 세상에 없거든.
태어난 모든 것들은 결국 죽듯이,
시작이 있다면 끝도 당연히 있는 거니까.
영원한 건 없어.
나무는 썩고, 물은 증발하고.
죽기 위해 태어났으니,
언제 죽더라도 그건 이상한 일은 아닐 거야.
그런데 뭐, 어쩌겠어.
왜 모르겠냐고.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우리를 영웅으로 받들까 사람들이?
당신의 헌신에 감사한다며,
우리가 이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을 값지게 쳐줄까?
아니지, 밝은 미래에 우리 같은 과거의 괴물들은 필요하지 않아.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고 밝은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최대한 깊게 묻히게 될 거야.
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다시 빛을 보는 일은 없도록.
북쪽의 공산주의 대가리와 남쪽의 자본주의 대가리들은 손을 잡겠지.
서로 목을 따려고 준비했던 칼들은 버려버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사상과 이념이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의 자리는 더는 없을 거야.
우린 과거의 망령일 뿐이니까.
지워져야 할, 잊혀져야만 할 존재들이니까.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
약점이 될 만한, 책잡힐만한 일은 나같아도 치워버리겠다, 그치?
과거는 거름이 되어 미래를 위한 양분이 되어준다.
말은 좋지.
과거도 한때는 미래였던 때가 있었는데.
자그맣지만 그 누구보다 밝았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자칭 미래들은 알까?
자기들도 언젠가 과거가 될 거라는 걸?
그때에 있을 미래를 위해 거름이 되어야만 한다는 걸?"
달이 밝게 빛난다.
"근데 그거 알아?
그래도 난 살아남을 거야.
지금 전쟁이 끝나도, 또다른 전쟁 속에 들어가는 일이란 거 알아.
총으로 하는 전쟁은 끝나고, 다른 것들로 하는 전쟁일 거야.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손가락질받아도, 욕을 먹더라도, 난 살아남아서
가족들의 품에, 혹은 가족들의 묘지에 갈 거야.
갈거라고.."
밤하늘 무수하게 많이 빛나는 별들 아래 공기가 시리도록 차갑다.
그때, 밤하늘을 전투기들이 가로지르고
먼 곳에 포격을 시작한다.
귀가 찢어질 것 같은 폭발음들이 빛과 함께 쏟아져내리고
군인 둘의 모습이 그제야 보인다.
이미 죽어있는 군인과 그 옆, 담배를 입에 문 채
피로 물든 배를 부여잡고 있는 군인.
담배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