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흘려보내기
칸트가 말했듯,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적 능력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엄성을 가질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우리는 정확하고 완벽한 판단을 위해 이성적 능력을 키우려 노력합니다.
이제는 유행이 지났지만, 저는 가끔 MBTI 성격 유형 검사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즐겨볼 때가 있었습니다. 다들 사고 유형이 강한 T와 감성 유형이 강한 F친구들을 비교하며 한 번쯤 웃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고 유형이나 감성 유형 각자의 강점이 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환상을 가지기도 하는 성공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T 유형만 필요하다는 식으로 영상에서 다뤄지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나면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 부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자주 먹곤 했습니다. 직접 기른 상추 한 봉지를 어머니께 전해달라며 소소한 선물을 받기도 하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본 요즘 아이들의 모습은 제 옛날의 모습과 조금 다른 듯합니다. 다들 끝나면 학원에 가기 바쁘고,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기보다는 주변 식당에 가서 생일 파티를 하기도 합니다. 옛정 문화가 없어지고 차가운 사회가 되었다는 말이 더욱 실감이 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성적 능력은 빛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 한 편에서, 그러니까 그림자처럼 항상 우리의 옆에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를 항상 봐달라고 표현을 하지만 우리는 ‘눈치 없는 친구야 여기서 네 존재감을 드러내지 마!’ 하고 말하곤 하죠. 네 맞습니다. 감정이라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이성이라는 친구와는 다르게 항상 변화합니다. 기뻐하다가도 슬퍼하다가도 놀라워하기도 합니다. 감정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고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감정이란, 어떤 영화에서 대사로 나왔던 예쁜 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심해서 잘 다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뉴스를 보다 보면 살인사건, 폭행사건 등의 일은 단골 주제로 나타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살인자들이 이성적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폭행, 살인사건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성적 능력이 뛰어난 교수가 저지를 수도 있고, 좋은 대학을 나온 아주 똑똑한 사람이 계획적으로 저지를 수도 있죠.
감정이라는 친구는 다시 말하지만 예쁜 칼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그 칼은 타인을 찌르고 나아가 나 자신을 찌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고통을 느낍니다. 타인을 상처 주는 동시에 나 또한 상처받기도 합니다.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감정에 아직 미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요리를 위해 칼을 처음 쓸 때 손이 베이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지금부터 우리들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 제 자신의 처절했던 자기반성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 깨달음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