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맛

그리움, 막걸리 술빵

by 수련

지방도로를 운전하면서 가다 보면 길가에 찐 옥수수와 막걸리 술빵을 파는 곳이 가끔 보일 때가 있다. 지나고 나면 아 예전의 그 빵맛을 그리며 차를 세우고 살 걸 후회 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간식으로, 어른들의 새 참으로 만들어 먹던 막걸리 술빵이다. 비 오는 날 “파전과 막걸리”가 빗소리에 어울리는 단짝이라면, 기억 속에서 빗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음식은 막걸리 술빵도 있다. 달지도 짜지도 않은, 담백하고 소박한 빵 한 조각, 그 맛이 그립다.


도시에 살면서 생크림이 듬뿍 올린 부드러운 케이크나 좋아하는 치즈타르트 등 예쁘게 진열된 화려한 빵집 앞에서는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크다. 하지만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건 전통시장의 듬성듬성 콩이 박힌 노란 술빵이다. 시장에서 커다란 조각의 노란 술빵 두 조각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은 빵에서 술 냄새가 난다고 신기한 듯 구멍이 숭숭 뚫린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다. “이 빵은 엄마가 어릴 적 외할머니가 해주신 최고 간식이었다.” 말하면서 내 마음은 고향의 마당에 가 있다.


비 내리는 날 시골집 안마당과 대문사이에는 헛간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동네 아주머니 두세 명이 앉아 어제 밭에서 작업한 풋고추와 오이 선별작업을 하느라 바쁜 손길들이 오간다. 부엌에서는 엄마가 새참을 마련하기 위해 큰 솥에 김을 올린다.

엄마는 큰 양푼에 밀가루를 담고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 받아 놓았던 막걸리를 부어 가며 주걱으로 반죽을 한다. 한나절이 지난 후 반죽이 부풀어 오르며 살아 숨 쉬듯 기포가 방울방울 터지는 모양은 어린 내 눈에 신기한 마술 같았다. 전날 밭둑에서 콩깍지 몇 개를 따다 씻어둔 강낭콩이 콕콕 박히고, 찜솥에서 김이 피어오르면 집 안 가득 막걸리의 은근한 술 향기와 달콤함이 퍼졌다.


갓 쪄낸 술빵을 한 김 식혀 네모나게 자른 후 쟁반에 올리고 수박 한 덩어리 빠개면 모두가 좋아하는 최고의 간식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른들은 간식을 먹으며 어젯밤 순이네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는 얘기며 동네의 크고 작은 이야기 꽃을 피운다. 술빵을 먹는 시간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잠시 노동을 잊게 하는 위로였고, 이웃의 작은 소식도 들을 수 있는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그리운 고향의 빵맛을 상상하며 오랜만에 술빵을 만들었다. 숨구멍이 부풀어 뽀글거리는 반죽 냄새에서, 찜솥에 오르는 김에서, 고향의 부엌을 떠올렸다. 완성된 빵은 술향이 나면서 포근포근하고 담백한 맛이다. 딸도 예전에 할머니 하고 먹었던 술빵 맛이 난다고 한다. 넉넉하게 만든 빵을 사무실에 가져가 동료들과 나누어 먹는다. 사무실 동료들은 외할머니가 해주셔서 어린 시절 먹은 기억이 있다며 이십 년 만에 먹는다. “옛날 생각난다”라며 각자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 순간 술빵은 한 사람의 개인적 기억을 넘어, 세대를 이어주는 감성을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막걸리 술빵은 모양이 예쁘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넉넉하지 못한 시절 특별한 간식으로 즐겨 먹던 그 안에는 삶의 결이 있다. 투박하지만 정직하고, 담백하지만 오래 남는 맛.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건 술빵의 맛일까, 아니면 그 빵을 함께 나누던 순간일까.

어쩌면 진짜 행복한 일상은 화려하고 유명한 빵맛이 아니라, 술빵처럼 소박한 것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하고 고요한 시간의 기억인지도….

발효과정과 완성된 막걸리 술빵


[막걸리 술빵]

(재료)

밀가루 4컵, 생막걸리 2컵, 우유 반 컵, 달걀 1개, 설탕 반컵, 소금 2 티스푼, 강낭콩 한 줌, 견과류

(만들기)

1. 막걸리에 설탕, 소금, 우유를 넣고 골고루 저어준다. (우유는 전자레인지에 데워주고 달걀은 상온에 두어 미지근해야 발효가 잘된다)

2. 밀가루는 체에 쳐준 후(공기층 확보) 1번 재료를 넣고 달걀을 넣어 플레인 요플레 정도의 농도를 만들어 멍울 없게 반죽을 한다.

3. 비닐을 씌워 실온에서 4시간 정도 발효시킨다. (반죽이 빵빵하게 두배로 부풀고 구멍이 숭숭 보인다)

4. 부푼 반죽에 불려놓은 강낭콩이나 견과류를 반만 넣고 섞어준다.

5. 물이 끓는 찜기에 젖은 면 보자기를 올린 후 반죽을 골고루 펴 부어준다.

6. 남겨놓은 콩을 고명으로 얹고 뚜껑을 덮고 중간 불에서 30분 정도 쪄준다(익으면서 빵이 부풀어 오르므로 7부 정도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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