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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은 진화하지 못한다.

by 마부자


금주 91일째, 한동안 평일과 구분 없는 일요일 아침이 주는 평온함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아직 일요일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울리지 않는 알람소리에 눈을 떠보니 오전 6시에 눈을 였다. 내 몸도 휴일을 바라고 있나? 하는 잠시 생각을 했지만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다가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책을 펼쳤다. 새로운 문장을 만나는 이 시간은 여전히 설레고, 그 설렘 속에서 또 나를 한 장 넘긴다. 익숙한 혼자만의 루틴이지만, 그 익숙함이 오늘따라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늘 내가 고른 책은 도야마 시게히코의 <생각의 도약>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블로그 이웃인 “희망꽃”님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 되었고,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흘려보내듯 보았던 책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문장이 있었다.


그 문장은 그저 짧았지만, 내 안에 있는 고정된 내 사고를 흔들리게 했다.


“책을 읽고 시원하게 잊어버려라!”


나는 그 문장을 처음 봤을 때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고 잊으라고?


책을 읽는 목적이 곧 남기는 것, 기억하는 것, 배워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던 내게 그 말은 어딘가 통쾌하면서도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책을 만든 사람이 책을 잊으라고 한다는 것. 그 안에는 분명 단순한 도발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나는 그 의도가 너무도 궁금했다. 도대체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자신이 쓴 문장을 기억하지 말고, 머리에 담아두지 말고, 시원하게 잊어버리라고 말하는 사람. 그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깊은 의도는 무엇일까.


그 물음표를 안고는 도무지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읽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잊기 위해.

오늘 <생각의 도약>을 읽으며, 한참 동안 멈춰 있었다. 책 속의 문장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질문처럼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다시 나에게,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바람이 불어야만 날 수 있는 글라이더처럼 살지 말라고. 스스로 나아가는 엔진형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나는 그 말을 읽고 한동안 숨을 고르게 됐다.내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선택이 누군가의 바람에 기대어 떠밀리듯 흘러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우리 안의 나약함만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의지하던 바람조차도 더는 안전하지 않다. 컴퓨터라는 놀라운 글라이더형 존재가 우리를 대신해 더 정교하게,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모든 것을 해내고 있다.


우리가 만든 도구가 이제는 우리를 위협하는 시대. 그리고 그 도구 앞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이 모든 시작이 교육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책의 지적이 나는 뼈아프게 와닿았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정답을 외우고, 흐름을 따르게 만드는 교육 속에서 인간은 점점 기계적인 존재로 길들여지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문장이 하나 있었다.


“생각은, 생각해야 생각이 된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생각한다’는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사유하지 않은 채 허상이나 공상을 그저 스쳐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는 척, 고민하는 척, 그렇게 외부 자극에 반응만 하면서 진짜 내면의 깊은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 책이 흥미로웠던 또 다른 이유는 '망각'에 대한 새로운 시선 때문이었다. 기억하지 말라는 말. 책을 읽고 잊으라는 말. 그 문장은 처음엔 낯설고 조금은 이상하게 들렸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묘하게 납득이 되었다.


생각이라는 창고에 너무 많은 짐이 쌓이면 가장 중요한 생각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게 우리가 자주 겪는 혼란의 정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시원하게 잊으라고 머릿속의 공간을 정리해야 정말 필요한 순간, 진짜 중요한 생각이 제자리에 있다는 걸. 결국 이 책이 내게 말해준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은 진화하지 못한다."


그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마지막 애정처럼 들렸다.

저자가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컴퓨터와 인간의 대립이다. 인간이만든 컴퓨터에게 결국 인간들은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우리는 생산수단이라는 자리를 컴퓨터에게 내어주었다. 그리고 기계들을 관리하는 자들이 되어 작은 공간에서 생각을 통해 그것들을 관리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 생각을 하는 컴퓨터가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갈것 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인간은 설 곳이 없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였다.


얼마전 읽었던 송길영작가의 <시대예보:호명사회>에 나온 한 문장이 문득 생각이 났다.

내 "일"이 편해지면 결국
"나"는 불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시대예보: 호명시대 중에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앉아서 모든 것을 컴퓨터에 맞긴 삶을 산다면 결국 “나” , “우리”는 불필요해지는 것이다.


기계가 생각을 대체하는 시대. AI가 인간의 판단을 넘어서고, 우리는 점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그렇게 계속 내어주다 보면, 결국 남은 자리에서 인간들끼리 생존을 위해 싸우고, 서로를 위협하며, 마지막엔 종말이라는 벼랑 끝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이 책을 통해 ‘생각다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깨 달았다.


책을 덮고 썼던 글을 다시 보니 내가 생각이란 말을 정말 많이 쓰고 있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일기를 쓰며 생각하고 정리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들 중에 진정한 생각이란 것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오늘, 나는 다짐했다. 누군가의 바람에 기대 날지 않고, 내 안의 엔진으로 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겠다고. 그 첫걸음은 결국, 나만의 생각을 꾸준히, 깊이, 고요하게 쌓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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