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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Dec 29. 2024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시작이었다

아침에 웃으며 출근했던 아내가 쓰러졌다

2024년 2월 2일 오전 11시 53분,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나의 일상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아침에 웃으며 출근했던 아내가 직장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동료들이 심폐소생술을 해서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현재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119 구급대원의 말을 들었다. 몸속의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며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의 기억은 희미하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본능적으로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절박함만 남아 있었다. 파티마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고,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의료진이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손발을 묶는 모습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직시할 수 없었다.


곧이어 의료진이 나를 불렀고, 상황을 설명했다. CT 결과 뇌출혈이었다. 시간이 지체되어 뇌에 물이 고이고 있어 긴급히 수술해야 한다는 말은 나를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건강하던 아내가 뇌출혈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의사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뇌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늦으면 지금 생명이 위독하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수술을 하려면 환자가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당장 자가 호흡도 불가능한 상황이라 인공호흡기를 사용할지 여부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난 다급히 말했다. "그럼 호흡기를 해주세요"

의사가 말했다. "단 인공호흡기는 한번 하게 되면 만약 수술도 중 아내분이 의식불명(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사망 전에는 가족이 동의를 해도 뺄 수가 없습니다, "

난 다시 물었다. "그럼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내 물음에, 의사는 단호히 말했다. “그럼 죽을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고. 만약 해서 잘못되면 평생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을 수도 있다는 이 결정을 지금 나에게 하라고 재촉하는 의사가 증오스럽기까지 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일단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승낙했다, 인공호흡기가 장착되었다. 호흡기를 끼고 잠시 안정을 찾은 아내에게 다가가 나는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눈빛이 잠시 내게 머문 것 같았다. “괜찮아. 이겨낼 거야. 당신은 잘할 수 있어.” 그렇게 간신히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곧 그녀는 다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수술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었다.


수많은 싸인을 어디에 왜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건 수술 도중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뿐이었다. 나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불과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너무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서명을 막 마치고 수술대기를 기다리는데 딸이 소식을 듣고 병원에 도착을 했다. 순간 딸을 보고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데...." 딸도 나도 응급실 문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고, 목이 메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줄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 혹시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엄마 얼굴이라도 한 번 보라고 딸을 응급실로 보냈는데 이미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간 이후였다.


1차 수술은 터진 혈관을 잡고 출혈부위를 막는 수술이라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딸과 나는 수술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앉아 하염없이 기도를 올리는 것 말고는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아내를 위해 해줄 것이 없었다. 그냥 계속 기도를 하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1차 수술이 끝난 후 의사는 일단 출혈이 발생한 혈관은 급하게 막았지만, 이미 발생한 출혈로 인해 상황은 여전히 위태롭다고 했다. 이어진 2차 수술은 뇌에 물이 너무 많이 차서 뇌압을 낮추기 위해 머리에 관을 삽입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1차 수술보다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지만, 나는 단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었다.

 

2차 수술을 하는 동안 아내의 오빠와 언니도 병원에 도착했다. 함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삼키기를 반복하며 기도하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약 세 시간에 걸친 2차 수술이 마무리가 되고 의사는 일단 초기 대응이 잘 되어 급한 출혈도 막고, 뇌압도 조금씩 낮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생존 가능성보다는 사망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아내를 보기 위해 딸과 들어가 아직 의식이 없는 아내를 보며 나는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수고했어. 정말 고마워. 잘 버텨줘서 고마워. 이제  조금만 더 힘내줘."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딸도 엄마에게 제발 정신 차리라고 울며 애원을 했다.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나고 중환자실 문이 닫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아침에 끓여둔 김치찌개를 보자 또 한 번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작은 찌개 한 냄비가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기억인지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현실과 악몽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길고도 아득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아내의 손을 다시 꼭 잡을 날만을 기다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고통의 끝이 언젠가 아내의 건강한 모습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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