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두려움 사이의 사투
중환자실에서 흔들리는 희망의 촛불
새벽 3시. 술기운에 겨우 잠들었던 눈이 떠졌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심장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내가 눈을 뜨고 생각하는 이 순간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라면서도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실이라는 이름이 나를 잔인하게 짓눌렀다. 어둠 속에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마다 부르던 존재들—신이여, 우주여, 영혼이여—내 모든 마음을 다해 애원했다.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 그녀가 이 고비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게 힘을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지켜주세요.” 매일 물어왔던 나의 존재 이유를 이번만큼은 보여달라고, 내가 그녀 곁에 서야 하는 이유를 증명할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기도를 멈췄지만 텅 빈 가슴은 여전히 무겁고 공허했다. 불안이 잠든 새벽의 어둠 속에서 홀로 깨어나 있었다.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아 휴대폰을 열었다. 응급실과 인공호흡기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색창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은 모두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면 폐렴이 생길 수 있다.” “호흡기를 한 번 끼우면 떼기 어렵다.” 모든 문장이 내 결정을 질책하는 듯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고통에서 벗어날 기회를 내가 막아버린 건 아닐까. “만약 그녀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내가 그녀를 더 힘들게 만든 건 아닐까?” 죄책감은 어둠 속에서 끝없이 자라났고, 나는 그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계속 움직여야 한다.”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생각 끝에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오늘 가서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면 바로 병원을 옮기려는 마음이었다.
섬에서 근무 중인 아들이 배를 탔다고 연락이 왔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딸과 통화한 뒤 결국 나오기로 했단다. 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사랑은 눈물겨울 정도로 따뜻하고 강했다.
중환자실은 오전 11시 20분부터 40분까지 하루에 단 한번 20분간 면회가 된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집에서의 시간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하며 그녀가 매일 출근하던 직장을 지나쳤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사무실의 풍경을 보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 그 평범한 건물이 이렇게 슬프게 느껴질까. 그녀가 웃으며 걸어가던 그 길이, 나에게는 너무도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서 면회를 기다리던 중, 수술을 담당했던 과장님을 우연히 만났다. 나는 그를 붙잡고 간절히 물었다. “수술은 잘된 건가요?” 의사는 차분히 말했다. “심장마비는 아닌 것 같아서 수술을 단행했는데, 결과는 잘 나왔습니다. 상태는 어제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 짧은 말은 내게 세상을 얻은 듯한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 간절한 내 부탁에 의사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면회 시간이 되고 응급실의 문이 열렸고, 난 제일 먼저 응급실로 떠내려 가듯 떨리는 발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 자기야 나 물 좀 줘.” 그 한 마디가 나의 가슴을 울렸다. 어제의 위태로운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조금 더 나아져 있었다. 나는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정말 고마워.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 내 말에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물었다. “자기야, 나 왜 여기 있어?” 아직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그녀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손발이 묶여 있는 불편함 때문인지 계속 몸부림쳤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시자 그녀는 조금씩 진정되었다. 뒤이어 형님과 처형이 인사를 하러 들어왔다. 다행히 아내는 두 사람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파 누워있는 아내를 위해 우린 서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의사와 마주 앉아 아내의 경과를 물었다. 내 마음속 작은 희망의 촛불은 그의 첫마디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환자분은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입니다." 그 말은 마치 칼처럼 내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그는 덧붙였다. "현재는 안정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간신히 막아둔 혈관이 다시 터진다면, 그때는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더 이상 없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무언가가 나를 질식시킬 것 같았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희망마저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때 의사는 조금 망설이더니 또 다른 진실을 전했다. “환자분께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면 폐렴이 발생합니다. 현재 수술 부위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만약 폐렴이 발생하면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스스로 내린 선택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나를 짓눌렀다. 그녀를 살리겠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된 결정이었지만, 그 결정이 오히려 그녀를 해치게 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폐렴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면, 나는 그녀를 죽인 살인자가 되는 셈이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두려움과 분노, 죄책감과 허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의사가 계속 무언가를 설명했지만, 더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릴 뿐, 나는 이미 고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 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나를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희망을 붙들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그 손을 놓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차가운 병원 복도에 홀로 서서,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다시 내 마음 어딘가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포기하지 마. 그녀가 싸우고 있어. 그녀를 믿어.” 그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다시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라도 나를 붙잡을 이유는 그녀였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며, 나는 그녀가 다시 눈을 뜰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를 살리고 싶다는 내 선택이 옳았기를, 그리고 이 선택이 그녀를 다시 내 곁으로 데려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나고 병실을 나서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말을 건네고, 나를 바라봐 준 그 순간들이 너무도 고맙고 대견했다. 그 모습이 내게 주어진 작은 기적 같았다. 다시금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그녀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신이여, 우주여, 영혼이여,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부탁드립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걱정 어린 메시지가 이어졌지만, 나는 더 이상 안부 전화를 받을 힘이 없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감정을 되새기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집에 도착하자 딸이 엄마의 상태를 물었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엄마가 정말 잘 견뎌주고 있어. 조금만 더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야.” 딸은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감사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오늘 그녀는 어제보다 나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희망은 간절히 바라는 마음속에서 자라난다. 나는 내일 그녀가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다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녀와의 새벽 약속을 마음속에 새기며.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