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번역가
"풀부이를 다리에 끼우고, 물을 이렇게 잡아서 민 다음 다시 팔을 돌려놓습니다. 1번이 먼저 출발해 보세요."
새로운 수영장에서는 선생님이 나를 수업 교재로 사용하시는 느낌이다. 자세를 설명할 때 관절이 꺾이는 마네킹처럼 나를 사용하시기도 하고, 나더러 먼저 출발해서 시범을 보이라고 하시기도 한다. 이럴 때는 사실 내 자세도 완벽한 것이 아니라서 시범을 보이기가 민망하기도 하지만, 물안경을 끼고 잠수해서까지 열성적으로 관찰하며 자세를 따라 하려고 하는 수강생들의 열정에는 고무적인 데가 있기에 기꺼이 수업 교재로서의 시간을 받아들인다.
선생님의 입에서, 시범을 보이라—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비슷한 말이라도 떨어졌을 때에는 그 회원의 시범을 보인 그 동작에 권위가 실리는 느낌이다. 나 역시도 전에 다니던 수영장에서 선생님이 오리발을 신고 접영 발차기에 평영 손 시범을 보이라고 했을 때, 왠지 모르게 선생님에게 영법을 인정받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들뜬 가슴으로 더욱 열심히 시범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회원들 사이에서 나는 해당 드릴의 최고 권위자처럼 등극하여, 선생님이 그 드릴만 주문했다 하면 2~3번에 섰던 나에게 1번으로 가라는 둥 모두가 하나같이—매우 부담스럽게도—손사래를 치며 순서를 양보했더랬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고자, 그저 운동의 일환으로 수영장에 온 사람들도, 수영을 계속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고 싶어진다. 팔꺾기 각도가 어떻게 되든, 접영 리커버리 시에 팔이 구부러지든 말든, 사실 건강과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그저 운동만 하면 건강을 유지한다는 목표는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왠지 수영을 하다 보면, 수영인들에게는 어떤 목표가 생기는 듯하다. 6개월 안에 모든 영법을 배우겠다, 2년 안에 상급반으로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나, 등등. 그래서인지 영법을 배우는 진도가 빠르거나 반 승급이 빠른 회원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중에서도 단연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것은 역시 "시범"을 보이라는 말이겠다. 시범, 그것은 하나의 영법이나 드릴에 있어서 남들의 눈에도 보고 배울 만한 요소가 있다는 말로, 속도도 속도거니와 어느 정도 자세가 정확히 잡힌 자에게 주어지는 찬사일 것이다. 시범이라는 말에 담긴 함의가 그렇기에, 그런 말을 들은 사람도 하루 종일—어쩌면 몇 년에 걸쳐 두고두고—기분이 좋아지고, 그런 달뜬 기분을 간접 체험하는 주변 사람들도 부러워지는 것이리라. 그러니만큼 시범을 보일 때는, 고무된 기분이 너무 빤히 드러나 보이지는 않도록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히,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