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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수영하는 번역가

by 백지민

"왼팔 아니고 오른팔만 하는 거예요!"

1번으로 선 상태로, 자유형 한팔 드릴을 2바퀴 돌고 오라는 주문에 한 바퀴는 오른팔로 돌았다가, 제멋대로 다음 바퀴는 왼팔로 돌았더랬다. 원래 양쪽 호흡을 잊지 않으려고 자유형을 한 바퀴 하더라도 갈 때는 오른쪽 호흡, 올 때는 왼쪽 호흡을 하고 있었기에 그저 균형을 맞추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아뿔싸, 자유형 한팔 드릴을 왼팔로 돈 다음 일어나서 보니 뒤따라오는 20명 남짓의 회원들이 전원 나를 따라서 왼팔로 자유형 드릴을 하면서(당연히 왼쪽 호흡을 훈련한 적이 없으니 분투하면서) 오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선생님의 지시 그대로만 해야 뒤따라오시는 분들에게 혼선이 없겠구나, 싶어 살짝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수영에서는 출발하는 순번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상위 5번까지도, 아니 회원들이 많다면 그 뒤쪽 순번까지도 꽤나 실력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개중에서도 레인에서 1번에 서는 사람은 단연 레인 선두에 설 만한 속도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거기다 모든 회원들이 1번이 어떻게 가는지 보고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선생님의 지시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 선생님이 말로 해서 잘 설명이 되지 않으면 1번더러 먼저 출발해 보라고 하기 때문에, 시범을 보이는 빈도도 단연 1번이 높다. 뒷사람들이 답답해하지 않을 만한 속도, 물소리로 먹먹한 수영장에서 늘 선생님을 향해 열려 있는 귀, 선생님의 주문을 그대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올바른 영법 및 드릴 자세가 한데 어우러져야지만 올바로 수행해 낼 수 있는 것이 1번의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20명 남짓의 회원들이 나를 따라 왼팔로 자유형 드릴을 하며 뒤쫓아온 그 순간에 떠오른 단어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라는 단어였다. 극지방에 사는 펭귄들은 사냥을 할 때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다들 얼음 바닥에 서서 바다로 뛰어들기를 주저주저들 하고 있을 때 용기를 내어 맨 먼저 뛰어드는 펭귄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게 먼저 뛰어든 퍼스트 펭귄을 따라서 다른 펭귄들 역시 용기를 내어 깊은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나머지 펭귄들은 퍼스트 펭귄이 뛰어든 지점과 그 입수 자세를 잘 보고 따라 하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 용기만큼은 따라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전례를 따르는 행동은 영어로는 카드 게임에서 같은 짝의 카드(suit)를 따라서 낸다(follow)는 "follow suit"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상급반의 퍼스트 펭귄으로서 미지의 바다에 뛰어들 때, 암초가 있는 곳에 뛰어들기라도 하면 다른 펭귄들도 그대로 암초로 뛰어들기에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상황을 잘 판단하고, 올바르게 물로 뛰어들어 뒤따라오는 펭귄들을 안전히 인도하는 것이 퍼스트 펭귄, 즉 1번 된 자의 도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퍼스트 펭귄으로서, 펭귄들을 이끌고 힘차게 나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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