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번역가
적십자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나를 지키는 훈련이었다. 일단 익수자를 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살아야 다른 사람도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속에서 살아남고자 고된 체력 훈련을 하며 몇 시간씩 수영을 하기도 했다. 일단 물속에서 내가 살아 있어야지 남도 구할 것 아닌가. 그런 체력 훈련 이외에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든 구조법이 최대한 익수자에게 잡히지 않고—익수자에게 잡히면 그대로 둘 다 익사하는 길이기 때문에—레스큐 튜브를 뻗어서 익수자에게 건네기도 하고, 피치 못한 상황에서 맨몸으로 구조할 시에는 수하 접근으로, 차라리 익수자의 발밑을 지나가 등 뒤에서 익수자를 구하는 방법을 쓰는 등, 익수자와 정면으로 접촉하는 일을 피한다는 점이었다. 그에 더해 익수자에게 팔목이 잡혔을 때 빠져나오는 법, 어깨를 잡혔을 때 기도를 확보하는 법 등도 배웠음은 물론이다. 사람이 사지에 몰리면 뭐라도 움켜잡아 살아남으려고 하기에, 무작정 익수자를 구하러 물에 뛰어 들어갔다가 익수자에게 머리채를 잡혀 머리 가죽이 뜯겼다, 볼의 살점이 패였다는 둥 도시 괴담 같은 얘기도 라이프가드 동기들 사이에서 전해졌다. 하여간 요지는, 익수자를 구하긴 구하되, 나 자신을 먼저 구해야지만 구조는 성공한다는 것이었다.
나 자신을 먼저 구한다—이 기본적인 원칙은 일견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매진하고자 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자신을 돌보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야근하고 바쁘니까 헬스는 내일 해야지. 커피 마시면 되니까 잠은 더 깎아야지. 읽던 책은 나중에 시간 날 때 마저 읽어야지. 그렇게 자신을 위한 시간들을 점점 줄여나가서 마침내 염원하던 일을 이뤄내고 나면—나의 경우에는 번역 마감을 지켜내고 나면—불태우고 나서 하얗게 잿더미처럼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래도록 책상에 앉아 있고 운동하지 않아서 허리가 저릿저릿하고, 커피를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켠 탓에 위는 쓰리고, 잠은 자지 못해서 눈마저 침침하고 뻐근하다. 그렇게 일상이, 자신을 돌보는 시간들이 무너진 곳에서 다시 규칙이라는 것을 세우려면 또다시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꾸준함과 인내심을 오래도록 발휘해야만 한다.
그렇게 몇 년간 생활하다 보니—몇 년간 마감 때만 되면 잠을 깎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운동을 그만두고 하다 보니—더는 이렇게 살면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무릇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들 하지 않는가. 물론 천하를 평정할 마음까지야 없지만, 그래도 본디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할 때 근간과 기본이 되는 것은 수신(修身), 즉 자신의 몸을 수련하는 일일 것이다. 자신의 몸 하나도 지켜내지 못하는데, 벼려내지 못하는데,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하는데, 무슨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단 말인가.
그런 면에서 어떤 일을 꾀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가장 놓치기 쉽지만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위한 투자이다. 아무리 일이 바쁘더라도 잠은 잘 것, 일주일에 몇 번은 운동을 갈 것, 루틴을 정해 놓은 대로 규칙적으로 생활할 것. 그 어떤 훌륭한 일이라고 할지언정 내가 정해 놓은 생활을 흐트러뜨리면서까지, 나를 망가뜨리면서까지 해야 할 가치는 없다—그 진리를 근래에야 깨달은 나는 드디어 모든 일에서 우선순위를 자신에 두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서야 주변이 바로 서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하면 주변까지 무너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 어떤 곤경에도 담대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과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과연 그런 정신과 마음이 어디에서 오느냐고 했을 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바로 체력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체력이 있어야 지하철에서 어르신에게 자리도 양보할 수 있고, 목발을 짚으신 승객에게 마지막 엘리베이터 자리를 양보하고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주변 세상을 배려와 여유로 채워, 주변 세상을 살리는 힘, 그것은 바로, 수신(修身)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