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번역가
누군가 수영은 부상 위험이 없는 운동이라고 했다.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지도, 중량을 올리다가 관절을 삐끗하지도 않고 물속에서 체중이 사라진 채 움직이기 때문에 다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접영을 하다가 플라스틱으로 된 레인 구분선에 손등을 몇 번이고 찍고, 플립턴을 하다가 발꿈치를 힘껏 데크에 찍어 물속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 보고, 힘차게 대시를 하다가 어깨 힘줄에 염증이 생겨 보고, 옆 레인의 평영 발차기에 이곳저곳 맞아 멍이 들어 본 나는 그런 말이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했다. 수영만큼 위험이 산재한 운동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요새는 헬스를 수영과 병행하면서, 그런 말이 왜 나왔는지 조금은 공감하고 있다. 물론 수영도 그 나름의 부상 위험이 있지만, 육지 운동에서 말하는 부상들은 이런 것이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헬스 중에서도 턱걸이를 하며 얻는 대표적인 영광의 상처는 굳은살이다. 초보자용 밴드를 발에 끼우고 턱걸이를 할 때는 손에 작게 굳은살이 잡혀서 뿌듯할 정도였는데, 밴드를 빼고 내 몸무게를 그대로 지탱해서 네거티브 풀업(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턱걸이와는 반대로, 점프하듯 위로 올라가 위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버티며 아래로 내려와 근력을 기르는 턱걸이)으로 강도와 횟수를 올리니 전례 없는 중량을 지탱하느라 손바닥 살이 밀려 물집이 잡혔다. 물집이 잡혔다가 터졌다가 또 잡혔다가 터졌다가. 부었다가 가라앉았다가 부었다가 가라앉을락 말락 할 때 또 부었다가.
손에 물집이 잔뜩 잡힌 그런 상태로 수영을 하러 가니, 오늘은 수영이니 손이 아프지 않겠지, 하는 생각과는 달리 자유형을 할 때 물만 잡아도 물집이 터질 듯하게 눌리면서 너무나 아픈 것이었다. 그래, 이렇게 아플 바에는 차라리 물을 더 세게 잡으면서 물속에서 물집을 터뜨려 보자, 하는 극기의 생각으로 통증을 참으며 물을 더욱 제대로 잡아 보았지만, 아프기만 하지 막상 터지지는 않았다. (물집이 아프니 더욱 세게 물을 잡았다는 나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광기가 아니냐며 혀를 내둘렀다.) 수영을 할 때뿐 아니라 손을 씻을 때, 타자를 칠 때 모두 아프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헬스 장갑이라는 것을 주문했다. 장갑을 끼고 턱걸이를 해 보니 워낙 부은 손이라 아예 안 아프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훨씬 나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헬스를 하면서, 물집이 잡혀 가면서, 멋진 굳은살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간다. 생각보다 물집이 잡혔다가 터졌다가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영광의 굳은살을 얻기까지는 그 뒤에 숨겨진 고통이 따랐던 것이다. 수영도 마찬가지로,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물살을 가르는 유선형 자세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번의 어깨 충돌 증후군과 레인에 찍힌 손등과 데크에 찍힌 발꿈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상쇄하는, 아니 오히려 웃도는 것들을 주기에 우리는 기꺼이 운동이 주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리라. 힘에 부쳐 부들부들 떨며 매달린 철봉에서,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느낌으로 올라온 스쾃에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갈 자신감과 근력을 얻는다. 차가운 물 속에서, 숨찬 자유형 대시에서, 힘이 다했지만 한 번 더 해본 접영 스트로크에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갈 정신력을 얻는다. 이런 내가 이 정도 계단을 못 올라가겠어, 이런 내가 이 정도 문장을 번역 못 하겠어, 하며 자신에게 힘을 주게 된다.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고통, 그것으로 얻어지는 것은 몸과 마음에 배기는 영광의 굳은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