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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건 어색했습니다.

첫 만남이었으니까요.

by 영순

나를 만나는 방법은

정확히 모르지만,

만날 수 없는 모든 것에서

로그아웃 하자,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왔다.




첫번째는 어색함이었다.

지금껏 안 만나고 살아왔는데,

굳이 만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만나려고 했던

나 자신은,

나의 전부를 알고 있는

그런 존재였기에

어색하기 보다는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남들 앞에서는

당당하고, 자신감있고,

그런 밝은 면들을 보이지만,

뒷 면에는 그와는 대조적인

어두운 면과 부끄러운 면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아는 것이

나라는 존재이기에...


그래서 그 만남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100% 알고 있는,

100% 읽고 있는 존재를

만나는 것은 어색함을 넘어

불편하다. 싫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은

내가 결정하고

지금껏 살아왔는데 말이다.




두번째로 느껴진 감정은
도망가고 싶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큰 병에 걸린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곧, 의사의 검진 결과를

들어야 하는 환자의 심정이랄까?


너무 큰 병인데,

고치려면 아주 힘든 과정이

남아있는데,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을

절망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나 자신을 만나면,

상처나고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아직 치유되지 않은

그 많은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텐데

그 뒤에 벌어질 일들,

내가 해야될 일들이 겁났다.


그래서 도망가고 싶었다.




세 번째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이제 나를 만나,

치유 과정이 시작되면,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마취없이, 수술대에 올라가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 심정이었다.


오히려, 모른 척 외면하고

살 때가 더 편하고 좋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도대체 왜

나를 만나려는 거지?


그냥 좋은 책,

좋은 영상 보면 안되나?


좋은 사람 만나서,

위로도 받고 그러면 안되나?


좋은 취미도 가지고,

몸을 움직여서

힘든 것들을 잊으려 하면 안되나?


나는, 나를 만나는 것 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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