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하는 연습
진실만을 말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존재다.
특히 예상치 못한 질문이 훅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그럴듯한 답변’을 먼저 찾게 된다.
나는 정직함의 깃발을 치켜올렸으면서도, 여전히 팔랑거리는 깃발 뒤에 숨어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1. "두루두루 같이 먹고 있죠."
오랜만에 연락 온 선배가 요즘 회사에서 누구랑 밥 먹냐고 물었다.
"아, 그냥 두루두루 같이 먹고 있어요."
사실은 주로 혼자 먹는다. 아주 편하게, 조용히,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작고 소중한 나만의 평화로운 시간.
"혼자 밥 먹어요."라고 말하면, 너는 사회성이 어쩌고저쩌고할 게 뻔해서 적당히 둘러댔다. 궁상맞아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누구누구랑 먹고 있어요~"라고 허세 부리기는 싫어서, 적당히 "두루두루"라는 표현으로 넘어갔다.
말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이유가 뭘까? "혼자 먹는 게 편해요."라고 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불안했던 거다.
어쩌면 스스로의 선택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2. "그날 약속 있어서…"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모임에서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아, 그날 마침 약속이 있어서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날 저녁엔 특별히 계획한 일이 없었다.
대안은 뭘까?
“그냥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될까? 그러면 상대가 "그럼 다음 주는?" 같은 후속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솔직히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뒤끝이 남을 테니까.
결국 문제는 '거절'을 자연스럽게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 오늘 그냥 쉬고 싶어서, 다음에 보자."라고 태연하게 말하는데, 나는 왜 그렇게 못할까?
아마도 '미움받을까 봐', 혹은 '불편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그런 걸 거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신뢰가 간다.
다음번에는 정말로 그냥 "요즘 좀 쉬고 싶어요."라고 말해볼까?
생각보다 별일 없을지도 모른다.
3. "아니, 아닌데?"
분리수거하는 날, 회식 후 집에 늦게 들어왔더니 박스와 쓰레기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 "박스는 좀 치워주지…"
다음 날, 아내가 물었다.
"어제 분리수거 쌓여있는 거 보고 궁시렁거렸지?"
순간 반사적으로 입에서 나온 말.
"아니, 아닌데?"
사실 맞지만 이걸 인정하면, "나 혼자 애 보느라 힘들었다고." 같은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 또 "회식하고 늦게 들어와서 너무 피곤했어."라고 답해야 할 테고, 그러면 "누가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 오래?"라는 논쟁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나는 논쟁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순간의 거짓말이 ‘평화’를 보장할까?
오히려 상대는 ‘뻔히 티 나는 거짓말을 왜 하는 거지?’라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다음번에는 그냥 "맞아, 피곤해서 그랬는지 어제 보고 좀 투덜댔어."라고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과 내가 하고 싶은 말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하는 연습
결국, 거짓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상황을 모면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거짓을 말하는 순간, 나는 내 선택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것이 되고,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나 자신마저 속이게 되는 것이다.
다음번에 선배가 밥 먹는 걸 물으면 "혼자 먹는 게 편해요. 사람 만나면 만나고요."라고 말해보기
모임 초대가 들어오면 "오늘은 좀 쉬고 싶어요."라고 해보기
아내가 도끼눈을 뜨고 물을 때도 "맞아, 근데 피곤해서 그냥 지나쳤어."라고 솔직하게 말해보기
진실을 말하는 것은 반드시 큰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조금만 덜 눈치 보고, 조금만 덜 포장하면 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연습하다 보면, 진실을 말하는 게 가장 편한 선택이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사진 : pixabay